역사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가 — 이덕일 재판과 '학문의 사법화'

iam 2026.10.1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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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ad180998eb42.png역사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가 — 이덕일 재판과 '학문의 사법화'

들어가며: 10년 전 재판이 2026년에 다시 소환된 이유

역사학자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2016년 동료 학자를 비판한 책 때문에 1심에서 징역형(집행유예)을 받았다가, 2심 무죄를 거쳐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그가 2026년 1월 2일 유튜브 채널 '이덕일 역사 TV'에 올린 47분짜리 영상 「역사학자 이덕일 재판이 말해준 것: 역사 논쟁은 관점의 싸움이다」는 그 재판의 안쪽을 당사자 입장에서 처음 공개하겠다며 시작한다.

영상이 나온 배경은 2025년 12월의 '환단고기 논쟁'이다. 12월 12일 이재명 대통령은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박지향 이사장에게 "무슨 '환빠' 논쟁이 있지 않느냐",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라고 물었고, 대통령실은 14일 "연구·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다음뉴스). 12월 17일에는 한국고대사학회·한국역사연구회 등 48개 역사학회가 공동성명을 내어 환단고기를 1979년에 간행된 위서(僞書)로 규정하고,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사이비 역사"와 선을 그으라고 요구했다(헤럴드경제, 경향신문). 한동훈 전 대표는 "없는 논란을 억지로 만들었다"고, 이준석 대표는 "학문과 위서를 관점의 차이로 동급 취급했다"고 비판했다.

영상에서 이덕일 소장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을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칭송했던 이덕일"이라며 "정통 역사학을 식민사학이라고 공격하는 인물"로 지목한 데 반박한다. 그는 지금의 전선이 "환단고기가 진짜냐 가짜냐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라" 어떤 역사관이 학문으로 인정받고 어떤 관점이 배제되는가의 싸움이며, 자신의 재판이 그 구조를 보여 준 사례라고 주장한다.

이 글은 세 가지를 한다. 첫째, 영상의 내용을 단계별로 요약한다. 둘째, 영상이 다루는 재판을 당사자의 기억이 아니라 실제 판결문으로 다시 읽는다. 셋째, 검사와 판사가 학문의 내용을 판정한 국내외 사례를 모아 '학문의 사법화'가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따져 본다.

영상 요약: 이덕일이 말하는 재판의 안쪽

영상은 당사자의 일방적 진술이다. 아래는 그 주장을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며, 검사·판사 개인에 대한 평가는 이덕일 소장의 주장임을 밝혀 둔다. 판결문으로 확인되는 부분은 다음 장에서 따로 다룬다.

1. 전선은 '진위'가 아니라 '관점'이다 (0분~5분). 이덕일은 환단고기 논쟁을 "광복 80주년이 넘도록 한국 역사학을 지배하는 친일 세력과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세력 사이의 싸움"으로 규정한다. 장동혁 대표의 발언은 "거짓말"이며,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칭송했다"는 말의 실체는 2016년 2심 무죄 때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페이스북에 "무죄 판결 축하하고 환영합니다"라고 쓴 것뿐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48개 학회 대표들과의 생중계 공개 학술토론(단군조선의 실재, 낙랑군의 위치, 고려·조선 국경, 간도와 독도)을 다시 제안한다.

2. 여호규 한국고대사학회장의 경향신문 칼럼 반박 (5분~9분). 이덕일은 학회 성명이 "사이비 역사가 독재 정권의 국수주의 이념을 제공했다"고 한 데 대해, 박근혜 정부 국정교과서를 주도한 것은 오히려 주류 사학계 인사들이었고, 이병도·신석호 등 식민사학 계보가 역대 정권에 부역했다고 반박한다. 낙랑군 평양설이 "조선총독부가 여기 있었다는 것만큼 명백한 사실"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공개 토론을 요구한다.

3. 재판의 시작: 고소와 '고검 직접 기소' (9분~16분). 2014년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실명 비판을 하자, 동북아역사재단 이사를 지낸 김현구 고려대 교수가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했다. 서울서부지검은 무혐의 처분했으나, 항고를 받은 서울고검 검사가 재수사 명령 대신 직접 기소했다. 이덕일은 박찬종 변호사가 "수십 년 변호사 생활에서 고검 직접 기소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기소 후 검사가 통보 없이 자신을 불러 고소인과 대면시켰고, 그 자리에서 "백제 왕자가 일본에 인질로 간 게 사실 아니냐"고 추궁당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공소장이 "검사의 독후감"에 불과하며, 공소장이 '백제 왕자'와 '왜(倭) 천황'을 나란히 쓴 것 자체가 검사의 역사관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4. 김현구 저서의 내용 (17분~24분). 이덕일은 김현구가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일본서기를 근거로 백제 왕녀들이 "일본 천황을 섬기기 위해" 건너갔고, 백제가 야마토 군사를 "오늘날 주한미군처럼" 신라 접경에 배치했다고 썼다고 소개한다. 이런 서술을 비판한 것이 기소 사유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김현구가 와세다대 지도교수 미즈노 유의 "식량이 모자라면 한국이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평생 간직하겠다"고 썼다는 일화도 든다.

5. 1심 법정 (24분~39분). 이민석 변호사의 모두진술이 핵심이다. "학문적 논평은 표면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상대 주장의 모순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대동아공영권은 표면으로는 평화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학살의 이데올로기였다. 그걸 전쟁 이데올로기라고 부른 독립운동가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해 달라고 할 수 있는가." 이덕일은 고소인 신문에서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모순을 묻자 김현구가 "나는 일본서기만 알고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른다"고 답해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졌다고 전한다. 피고인 신문에서 그는 "독후감이 틀리면 감옥에 가야 하는가, 앞으로 역사학자는 검찰청에 가서 출판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고 말한다.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선고 한 달 전 검찰이 공소장의 표현을 '…라고 주장했다'에서 '…라고 주장했다고 기술했다'로 바꿔 의견 표명을 사실 적시로 만들었고, 재판부가 이를 바로 받아들였다는 것. 선고 전날 오후 4시에 검찰의 68쪽짜리 새 자료가 변호인 사무실에 팩스로 도착했고, 이튿날 오전 10시 선고에 반영됐다는 것. 판결문이 김현구 저서를 인용하면서 "오늘날의 주한미군처럼"이라는 대목을 '중략'으로 지우고 유죄 논리를 세웠다는 것. 1심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대목에서 이덕일은 담당 판사와 검사의 다른 사건·이력까지 끌어와 거칠게 비난한다.

6. "학문은 학문으로" (39분~47분). 유죄 판결 뒤 박정신 오클라호마주립대 종신교수 등 원로들이 '학문의 자유와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학자가 검사·판사에게 학문을 판결해 달라고 맡긴 게 말이 되냐, 미국 학계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했다는 대목, 그리고 원래 김현구를 이완용에 비유한 사람은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였고 자신은 그 문장을 인용했을 뿐인데, 최 교수가 유죄 소식을 듣고 "구한말과 똑같네요"라고 했다는 대목이 영상의 정서적 절정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판검사가 독립운동가를 잡았지만, 을사늑약 직후 구한말에는 조선인 판사가 의병장을 사형시켰다는 뜻이다. 영상은 한국의 항소심 파기율이 1~2%에 불과하고 이는 유죄율 99.9%의 일본 사법 체제를 따른 결과라며, 2심 이야기는 다음 영상에서 하겠다고 마무리한다.

영상의 한 줄 결론은 명확하다. "이 싸움에서 1심에서는 졌지만, 그나마 검찰보다는 법원이 낫다." 즉 영상은 사법부 전체를 부정하기보다 '학문을 형사법정에 끌고 간 검찰'과 '그걸 받아준 1심'을 결과적으로 바로잡은 2심·대법원과 대비시킨다.

판결문으로 다시 읽는 이덕일 사건

대법원은 김현구가 식민사학자인지를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그러한 비판은 가급적 학문적 논쟁과 사상의 자유경쟁 영역에서 다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사건의 세 심급은 다음과 같다.

심급

선고일

재판부

결과

핵심 논리

1심

2016년 2월 5일

서울서부지법 형사단독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피해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전제로 피해자를 식민사학자로 규정" (매일신문)

2심

2016년 11월 3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 (2016노287)

무죄

허위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 공익 목적, 공적 인물·공적 관심사에 "폭넓은 논평의 자유" (서울신문)

대법원

2017년 5월 11일

2016도19255 (조희대·김창석·박상옥)

검사 상고 기각, 무죄 확정

겉으로 사실 서술 형태라도 평균적 독자 관점에서 비평자의 의견이면 사실 적시 아님 (국가법령정보센터)

공소사실은 무엇이었나.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검찰은 이덕일이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김현구가 ①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다", ② "백제는 야마토 조정의 속국·식민지이고, 야마토 조정이 백제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라고 주장했다고 기술하고, ③ "일본서기를 사실로 믿고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고 기술한 것을 '허위사실 적시'로 보았다. 즉 김현구의 책에 그런 내용이 없는데 있다고 썼다는 것이 기소의 골자다.

대법원이 세운 기준. 판결문은 먼저 기존 법리를 확인한다. 명예훼손죄의 '사실의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이며, 사실인지 의견인지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입증가능성, 문제 된 말이 사용된 문맥, 그 표현이 행하여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으로 가린다. 그런 다음 이 사건을 위해 한 발 더 나간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비평하면서 사용한 표현이 겉으로 보기에 증거에 의해 입증 가능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서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글의 집필의도, 논리적 흐름, 서술체계 및 전개방식, 해당 글과 비평의 대상이 된 말 또는 글의 전체적인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평균적인 독자의 관점에서 문제 된 부분이 실제로는 비평자의 주관적 의견에 해당하고, 다만 비평자가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이해된다면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6도19255)

이 기준을 적용하면 ①②③은 "그 부분만을 놓고 보면 사실의 적시로 오인될 소지가 없지 않으나", 책이 머리말부터 식민사관 비판을 목적으로 썼고, 김현구의 책을 인용한 뒤 논리구조를 설명하고 해석과 비판을 덧붙이는 서술체계를 취하므로, 평균적 독자는 이를 '김현구가 임나의 지배 주체를 백제라고 했지만 그 밖에는 스에마쓰의 설과 일본서기 내용 대부분을 사실로 받아들였고 … 결과적으로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한 것과 다름없다'는 이덕일의 주장을 "함축적이고 단정적인 문장으로 서술한 것"으로 읽는다는 것이다.

판결이 말하지 않은 것. 대법원은 이덕일의 주장에 대해 "그 내용의 합리성이나 서술방식의 공정성 등과 관련하여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할지라도"라고 명시했다. 즉 이덕일이 옳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옳고 그름은 형사법정이 가릴 일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또 대법원은 2심의 이유 설시에 "다소 미흡한 점이 없지 않으나" 결론은 정당하다고 했다. 2심이 실제로 김현구의 견해가 스에마쓰의 설을 따랐다는 사실인정까지 나갔다는 보도가 있는데(경기일보 허성관 칼럼), 대법원은 그 사실인정을 추인하지 않고 '의견 표명'이라는 더 좁은 근거로 결론만 유지했다. 이덕일이 영상에서 '이재명이 칭송한 것은 무죄 판결이지 내 학설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구조로, 법원 역시 '무죄'와 '학설의 타당성'을 분리했다.

영상의 주장 중 확인되는 것과 확인되지 않는 것. 선고 전날 팩스로 온 68쪽 검찰 자료를 1심이 근거로 삼은 것이 공판중심주의·증거재판주의에 어긋난다는 점은 항소이유로 제기됐고 당시 보도로도 확인된다(매일신문). 서부지검 무혐의 후 고검이 직접 기소한 경위도 보도와 일치한다. 반면 검사가 기소 후 몰래 불러 고소인과 대면시켰다는 대목, 판사가 인용문을 의도적으로 '중략'했다는 해석, 담당 판사·검사의 다른 사건과 이 사건을 연결하는 대목은 이덕일의 진술과 해석일 뿐 공개된 기록으로는 검증되지 않는다.

한국의 다른 사례: 법원이 점점 더 명확히 선을 그어 온 과정

이덕일 사건 이후 한국 법원은 '학문적 표현을 형사처벌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점점 더 좁게 정의해 왔다. 다만 모든 '역사 주장'이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사건

쟁점

경과

법원이 그은 선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학자가 학자를 '식민사학'으로 비판

1심 유죄 → 2심 무죄 → 2017.5 대법원 확정

비평은 의견. "학문적 논쟁과 사상의 자유경쟁 영역에서"

종중 족보 사건 (대법원 2017도15628)

민사판결로 확정된 조상 계보에 반하는 책자 배포

2심 유죄 → 2017.12 대법원 파기환송

"민사판결의 사실인정이 항상 진실한 사실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학술서가 생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는가

2015.11 기소 → 1심 무죄 → 2심 벌금 1,000만 원 → 2023.10 대법원 파기환송 → 2024.4 서울고법 무죄 확정

학문적 표현에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 불허. 연구윤리 위반은 보호 밖

류석춘 (강의 발언)

수업 중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 발언

2024.1 1심 위안부 발언 무죄·정대협 관련 벌금 200만 원 → 2024.10 2심 유지

추상적 집단 언급은 표현·교수의 자유. 특정 단체가 '허위 증언을 교육했다'는 단정은 유죄

지만원 (5·18 북한군 개입설)

특정 시민을 '광수'로 지목한 책·게시물

2023.1 대법원 징역 2년 확정, 2025.10 광주고법 손배 9,000만 원

조사위 결과로 반박된 주장을 특정 개인에게 덮어씌우면 명예훼손

종중 족보 사건은 법원이 스스로 한계를 고백한 판결이다. 이덕일 판결 7개월 뒤 대법원은 조상의 계보를 두고 다투던 종중 사건에서 같은 법리를 다시 쓰면서 한 문장을 더했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관계 등에 대하여 민사판결을 통하여 어떠한 사실인정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 그와 반대되는 사실의 주장이나 견해의 개진 등을 … '허위의 사실 적시'라는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판결에 대한 자유로운 견해 개진과 비판, 토론 등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해석이 되어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대법원 2017도15628) 법원은 당사자가 낸 증거 중 더 믿을 만한 쪽을 고를 뿐, 역사의 진실을 확정하는 장치가 아니라는 것을 법원 스스로 밝힌 셈이다. 이 논리는 이덕일 영상의 "재판이 역사를 결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법원의 언어로 뒷받침한다.

박유하 사건은 보호의 범위와 한계를 동시에 그었다. 2023년 10월 26일 대법원 3부(2017도18697)는 헌법 제22조 제1항이 학문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므로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했다. 학문적 표현에 대해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고,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 보호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법률신문, 다음뉴스). 동시에 한계도 그었다.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표현, 논지와 무관하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표현은 보호받지 못하며, 사회적 약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법률신문 판례평석). 파기환송심(서울고법 2023노3351)은 박유하가 사료를 위조·변조했다거나 피해자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재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법률신문). 기소부터 확정까지 8년 반이 걸렸다.

류석춘과 지만원은 경계선의 양쪽을 보여 준다. 류석춘 사건 1심 재판부는 강의 중 위안부 발언이 "통념에 어긋나고 비유가 부적절하더라도" 학문적 내용이 아니라고 보기 어렵고,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재판보다 공개토론에서 가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대협이 할머니들에게 허위 증언을 교육했다는 발언은 "진위를 확인하려는 노력 없이 확정적·단정적으로 표현"했다며 유죄로 봤다(데일리안, 다음뉴스). 정의연은 이 판결을 "반인권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만원 사건에서는 법원이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결과 등을 근거로 북한군 개입설을 허위로 보고, 특정 시민을 북한군으로 지목한 행위를 명예훼손으로 판단했다(다음뉴스). 두 사건을 나누는 것은 '역사관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특정 개인·단체를 향한 검증 없는 단정인가 여부다.

헌법재판소의 5:4. 영상에서 이덕일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과장이다. 독일·일본 등도 진실한 사실의 적시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있다. 다만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한국에 폐지를 권고해 온 것은 사실이다. 헌재는 2021년 2월 25일(2017헌마1113) 재판관 5대 4로 합헌 결정을 했다. 다수의견은 명예가 "인격 발현의 기본 조건"이며 공익 목적이면 처벌하지 않는 형법 제310조가 제한을 최소화한다고 보았고, 반대의견 4인은 "공익성 판단은 불명확하고 판단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나중에 무죄가 되더라도 위축 효과가 남는다"고 했다(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이덕일·박유하 사건이 보여 주듯, 결국 무죄가 나더라도 1~8년의 재판 자체가 처벌처럼 작동한다는 반대의견의 지적은 이 주제의 핵심이다.

외국의 사례: 법정에 선 역사가들

역사를 법정에 세운 사례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다만 외국의 경험은 한 가지 방향으로 수렴한다. 법원이 개입할 때는 '무엇이 진실인가'가 아니라 '연구자가 사료를 정직하게 다루었는가', 그리고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선동인가'만을 묻는 쪽으로 가고 있다.

사건

나라·연도

무엇이 문제였나

결과

교훈

어빙 대 펭귄·립스타트

영국 2000

홀로코스트 부정론자가 자신을 '부정론자'라 부른 학자를 명예훼손으로 제소

어빙 패소, 2001 항소 기각

법원은 홀로코스트의 진위가 아니라 어빙의 사료 조작 여부를 심사

버나드 루이스

프랑스 1995

아르메니아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부르기 어렵다는 역사가의 인터뷰

민사 과실 인정, 배상 1프랑

"역사 논쟁을 재판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서도 '객관성·신중 의무' 위반을 인정한 모순

기억법 논쟁

프랑스 1990~2008

게소법(1990) 등 역사 부정을 처벌하는 법률 확산

2005 '역사를 위한 자유' 선언, 2008 블루아 호소

피에르 노라·홉스바움 등: 국가가 역사적 진실을 정해서는 안 된다

페린체크 대 스위스

유럽인권재판소 2015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를 "국제적 거짓말"이라 한 터키 정치인 유죄

대재판부 10:7, 표현의 자유 침해 인정

"법원은 역사적 사건의 성격을 구속력 있게 판단할 권한이 없다"

이에나가 사부로 교과서 재판

일본 1965~1997

문부성이 난징학살·731부대 서술 수정을 요구

1997 최고재: 검정제는 합헌, 731부대 등 수정 지시는 위법

국가가 역사 서술을 통제할 때 법원이 학문의 편에 선 사례

그라보프스키·엥겔킹

폴란드 2021

홀로코스트 연구서의 한 항목이 마을 촌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유족 소송

1심 사과 명령 → 항소심 파기

"법원이 연구 방법을 평가하고 사료를 검증하는 것은 검열이다"

어빙 재판: 법정이 역사를 다루는 가장 나은 방식. 데이비드 어빙은 데보라 립스타트가 『홀로코스트 부정하기』에서 자신을 부정론자로 부르자, 입증책임이 피고에게 있는 영국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2000년 1월부터 약 5주간 열린 재판에서 찰스 그레이 판사는 335쪽의 판결문을 썼다. 재판의 쟁점은 홀로코스트가 있었는가가 아니라 어빙이 사료를 어떻게 다루었는가였다. 리처드 에번스 등 전문가 감정은 어빙이 문서를 오역하고, 증언을 선택적으로 취사하며, 홀로코스트를 '증명'하는 데는 불가능한 기준을, '반증'하는 데는 빈약한 자료를 받아들이는 이중잣대를 썼다는 것을 보였다. 판사는 그를 "역사 기록의 위조자"로 불렀다(Encyclopedia.com). 법원이 개입하더라도 '결론'이 아니라 '방법'을 심사한다는 모델이며, 이것은 박유하 판결이 말한 '연구윤리 위반'의 기준과 닿는다.

버나드 루이스: 모순을 안고 있는 판결. 1995년 6월 21일 파리 1심법원은 프린스턴대 중동사 교수 버나드 루이스가 르몽드 인터뷰에서 1915년 사건을 제노사이드로 볼 "진지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 데 대해 민법 1382조의 과실을 인정하고 상징적 배상 1프랑을 명했다. 법원은 "역사 논쟁을 재판으로 해결하거나 역사를 성격 규정하는 것은 법원의 일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역사가가 반대 증거를 누락한 것은 '객관성과 신중의 의무' 위반이라고 했다(Armenian National Institute). '진실은 판단하지 않지만 신중하지 않았다'는 논리는 결국 법원이 어느 증거가 더 무게 있는지를 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억법과 역사가들의 반기. 프랑스는 1990년 게소법으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처벌한 뒤 노예제(2001), 아르메니아 학살(2001), 심지어 "해외 주둔의 긍정적 역할"을 교육하라는 법(2005)까지 제정했다. 노예무역 연구자 올리비에 페트레그르누요가 고소당하자 2005년 피에르 노라를 중심으로 '역사를 위한 자유(Liberté pour l'histoire)' 운동이 시작됐고, 2008년 에릭 홉스바움·자크 르고프 등이 서명한 '블루아 호소'는 국가가 정한 역사적 진실과 역사가에 대한 형벌에 반대했다. 티머시 가턴 애시는 같은 문장이 스위스에서는 범죄이고 터키에서는 그 반대가 범죄인 현실이 '국가가 정하는 역사'의 자의성을 보여 준다고 썼다(History News Network).

페린체크 판결: 유럽 최고 인권법원의 선. 스위스 법원은 2007년 터키 정치인 도우 페린체크가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를 "국제적 거짓말"이라고 한 데 대해 인종차별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유럽인권재판소 대재판부는 2015년 10월 15일 10대 7로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인정했다. 재판소는 1915년 사건이 제노사이드인지를 판단할 필요도, 권한도 없다고 했고, 역사 연구는 본래 논쟁에 열려 있어 일반적 합의를 전제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처벌의 기준은 발언이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폭력 선동인가였다(Wikipedia). 다만 재판소가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은 그대로 두어 '제노사이드 사이의 위계'를 만들었다는 비판, 반대의견 7인이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는 명백히 확립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밝힌 점도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이에나가 재판: 국가가 역사를 쓸 때. 일본의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는 1965년부터 32년 동안 세 차례 교과서 검정 소송을 벌였다. 문부성은 난징 학살, 731부대의 생체실험 등의 기술을 고치라고 요구했다. 1997년 8월 최고재판소는 검정제 자체는 합헌이라고 하면서도 731부대 서술 등에 대한 수정 지시를 위법으로 판단했다(미국역사학회). 이 사건은 법원이 학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역사 서술 통제를 제한한 사례로, '정부가 역사 기관을 통해 특정 역사관을 세운다'는 동북아역사재단 논쟁의 구도와 맞닿아 있다.

폴란드: 가장 최근의, 가장 명확한 선. 얀 그라보프스키와 바르바라 엥겔킹이 편집한 1,600쪽의 연구서 『밤은 계속된다』(2018)는 폴란드인이 유대인을 구한 사례와 밀고한 사례를 함께 기록했다. 한 촌장의 조카가 명예훼손 소송을 냈고, 2021년 2월 바르샤바 지방법원은 두 역사가에게 사과와 수정을 명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항소법원은 이를 뒤집으며 "법원은 연구 방법을 평가하거나 사료를 비판·검증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하는 것은 검열에 해당한다. 법원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악의와 왜곡에서 비롯된 명백한 허위뿐"이라고 했다(JURIST). 폴란드가 2018년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가담을 언급하는 것을 범죄화하는 법을 만든 직후의 일이다. 정치권이 '정통 역사'를 정하고 소송이 그 도구로 쓰이는 구조는 한국의 논쟁과 거울처럼 닮았다.

종합: 법정이 학문을 재단할 때 생기는 네 가지 문제

국내외 사례를 포개면 문제는 네 가지로 모인다.

1. 역량의 문제: 판검사는 사료 비판을 훈련받지 않았다. 이덕일 영상의 가장 설득력 있는 대목은 "사법고시 패스했다고 역사를 뭐 알겠는가", "재판 중 검사가 일곱 번 바뀌었다"는 지적이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사료적 가치, 임나의 위치, '속국'과 '대등 관계'의 서술 차이를 가리는 것은 형사소송의 증거법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빙 재판이 그나마 성공한 것은 법원이 직접 역사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들의 감정을 통해 '사료 취급의 정직성'만을 심사했기 때문이다.

2. 위축 효과: 무죄도 처벌이다. 이덕일은 3년, 박유하는 8년 반을 피고인으로 살았다. 헌재 반대의견이 지적했듯 "나중에 무죄가 되더라도 위축 효과는 남는다." 학자가 동료를 비판하기 전에 변호사부터 찾아야 하는 환경에서는 논쟁 자체가 얼어붙는다. 이덕일이 법정에서 던졌다는 질문, "앞으로 역사학자는 검찰청에 가서 출판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는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문제 제기다.

3. 판결의 오용: 무죄가 '학설의 인증서'로 소비된다. 역설적으로 무죄 판결도 오용된다. 대법원은 이덕일의 주장에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명시했지만, 무죄는 정치적 언어에서 '이덕일이 옳다'로 번역된다. 반대로 지만원의 유죄는 '5·18에 대한 모든 이론(異論)이 범죄'로 확장되어 읽힌다. 대법원 2017도15628이 말한 "판결의 사실인정이 항상 진실은 아니다"는 원칙은 양쪽 모두에게 적용된다. 페린체크 판결 뒤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제노사이드는 거짓말임이 확인됐다"고 선전한 것은 이 오용의 국제판이다.

4. 형사 명예훼손의 무기화: 고소는 싸고 방어는 비싸다. 한국에서 학술 논쟁이 형사사건이 되는 구조적 이유는 고소만으로 수사가 시작되고, 사실적시까지 처벌되며, 버나드 루이스의 '1프랑'처럼 상징적 민사배상으로 끝내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폴란드 사례는 민사소송이었고, 프랑스와 스위스의 형사처벌은 결국 유럽인권재판소와 역사가 집단의 반발을 불러왔다.

반대쪽 논거도 가볍지 않다

'학문은 학문으로'라는 원칙에도 예외가 있다. 박유하 판결이 명시한 "사회적 약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의 특별한 책임"은 생존 피해자의 인격권이 학문의 자유와 충돌할 때의 무게를 인정한 것이다. 독일의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은 '역사적 논쟁'이 아니라 현존하는 집단에 대한 증오 선동을 막는 장치로 정당화된다. 지만원 사건처럼 사진 속 특정 시민을 북한군으로 지목하는 행위는 학설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가해다. 그리고 어빙처럼 사료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 입증되면 "연구윤리 위반"으로 보호 밖에 놓인다.

법원이 그어 온 세 개의 선

이덕일부터 폴란드까지 판결들을 겹치면, 법원이 개입해도 되는 지점과 개입해서는 안 되는 지점은 세 개의 질문으로 정리된다.

  1. 의견인가, 사실인가. 타인의 글을 비평하면서 단정적 문장을 썼더라도, 평균적 독자가 그것을 비평자의 의견으로 읽는다면 사실 적시가 아니다(대법원 2016도19255). 학문적 표현의 '숨은 의도'를 추리해 암시적 사실 적시로 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17도18697).

  2. 방법이 정직했는가. 법원은 결론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사료 위조·변조, 고의적 누락, 해당 분야에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났는지만 본다(어빙 재판, 박유하 파기환송심, 바르샤바 항소법원).

  3. 특정인에 대한 가해인가, 집단에 대한 선동인가. 추상적 집단에 대한 주장은 논쟁으로, 특정 개인을 검증 없이 지목하거나 증오를 선동하는 것은 법으로(류석춘 사건의 무죄·유죄 분할, 지만원 사건, 페린체크 판결).

이 세 질문 밖의 영역, 즉 '어느 학설이 맞는가'는 어느 나라 법원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파리 법원도, 스트라스부르 재판소도, 대한민국 대법원도 같은 문장을 썼다. 문제는 그 문장을 쓰기까지 피고인이 치러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다.

영상에 대한 비판적 검토

영상의 핵심 명제, "학문은 판검사가 아니라 학문이 판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문과 국제 판례가 모두 뒷받침한다. 그러나 영상은 그 명제를 자신에게만 적용하고 상대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설득력 있는 지점. 첫째, 재판 절차의 문제 제기는 상당 부분 기록으로 확인된다. 선고 전날 팩스 자료의 증거 채택, 지검 무혐의 후 고검의 직접 기소, 의견을 사실로 바꾸는 공소장 변경은 모두 형사절차의 원칙과 관련된 정당한 문제 제기다. 둘째, 이민석 변호사의 '대동아공영권' 비유는 대법원이 나중에 "숨겨진 이면의 논리에 대한 가치판단"이라고 부른 것과 정확히 같은 논리다. 비평이란 표면이 아니라 구조를 읽는 것이라는 주장은 법리로 자리 잡았다. 셋째, 생중계 공개 학술토론 제안은 그 자체로는 '학문은 학문으로'라는 원칙에 부합한다.

한계 1: 모든 상대를 '친일 카르텔'로 환원한다. 영상은 48개 학회, 주류 언론, 검찰, 1심 판사를 하나의 "친일 매국 세력"으로 묶는다. 이것은 역사 논쟁을 관점의 싸움으로 보자는 영상 자신의 명제와 충돌한다. 관점의 싸움이라면 상대의 관점도 하나의 관점이어야 하는데, 영상은 상대를 관점이 아니라 '국적'으로 규정한다("검사 임무영과 판사 나상훈의 국적을 저는 못 씁니다"). 이는 이덕일이 48개 학회로부터 받았다고 항의하는 '사이비' 낙인과 같은 구조의 낙인이다. 대법원이 이덕일을 무죄로 본 근거는 그가 김현구의 책을 인용하고 논리구조를 설명한 뒤 비판을 덧붙이는 서술체계를 취했다는 점이었다. 영상은 그 서술체계를 상대에게 적용하지 않는다.

한계 2: 판사·검사 개인에 대한 별건 공격. 영상은 1심 판사의 과거 다른 사건 판결과 검사의 사생활 의혹을 길게 인용한다. 그러나 이는 이 사건 판결의 법리적 오류와 무관하며, 영상 전체의 설득력을 깎는다. 2심과 대법원이 1심을 뒤집은 이유는 판사의 성향이 아니라 '사실 적시와 의견 표명의 구별'이라는 법리였다. 영상이 그 법리를 설명하는 데 쓴 시간보다 인신공격에 쓴 시간이 더 길다.

한계 3: 환단고기 문제를 재판 구조에 끼워 넣는다. 영상 설명문은 "환단고기 논쟁 역시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덕일 재판의 쟁점은 임나일본부설 해석을 둘러싼 학자 간 비평이었고, 환단고기 위서 논쟁은 특정 문헌의 성립 연대와 사료적 가치를 가리는 문제다. 48개 학회가 환단고기를 1979년 간행 위서로 보는 것은 고소나 기소가 아니라 학술적 판단이며, 그것이 설령 틀렸더라도 '학문은 학문으로' 다루어야 할 대상이다. 이덕일이 자신에 대한 형사 기소를 '학문의 사법화'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학계의 학술적 반론까지 같은 범주에 넣는 것은 범주 오류다. 이 지점에서 영상은 대통령 발언과 정당 대표 발언이 모두 학문 밖의 개입이라는 점을 양쪽에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한계 4: 사실관계의 과장.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는 과장이고, "항소심 파기율 1~2%"는 출처가 제시되지 않는다. 당사자의 회고인 만큼 이해할 수 있지만, 사료 비판을 요구하는 역사학자의 발언으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정리. 영상이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재판이 아니라 '재판을 겪은 뒤의 사람'이다. 무죄를 받고도 10년 뒤 같은 상대와 같은 프레임으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법정이 학문 논쟁을 끝내기는커녕 더 깊이 진영화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법원이 "학문적 논쟁과 사상의 자유경쟁 영역에서 다루어지도록" 바란 그 영역은, 이 영상이 보여 주듯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맺음말: 재판은 역사를 확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같은 말을 했다. 비평은 의견이며, 판결의 사실인정은 진실의 확정이 아니다. 2023년에는 학문적 표현을 형사처벌하려면 검사가 그것이 학문의 자유 밖에 있음을 증명하라고 했다. 영국·프랑스·스트라스부르·바르샤바의 법원도 각기 다른 사건에서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법원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료를 조작했는지, 특정인을 근거 없이 가해했는지, 증오를 선동했는지를 가리는 것까지다.

그러나 이덕일 영상이 보여 주는 것은 그 원칙이 확립된 뒤에도 역사 논쟁이 다시 정치와 법의 언어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역사 기관에 특정 문헌을 묻고, 정당 대표가 특정 학자를 호명하며, 학회들이 정치권에 "선을 그으라"고 요구하고, 당사자는 상대의 국적을 묻는다. 어느 쪽도 사료를 펼치고 있지 않다.

이덕일 소장의 공개 학술토론 제안에 한국고대사학회가 응하고, 그 토론이 사료의 성립 연대와 교차 검증이라는 역사학의 언어로만 진행된다면, 그것이 대법원이 말한 "사상의 자유경쟁 영역"이 실제로 작동하는 첫 장면이 될 것이다. 검사도 판사도 대통령도 정당 대표도 그 자리에는 필요하지 않다.

참고 자료

영상

판결문

이덕일 사건 보도

2025년 12월 환단고기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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