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집』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오세이지족,통나무집, 포장마차, 바이올린을 켜는 아버지, 초원을 달리는 말괄량이 소녀 로라.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은 전 세계 수억 명에게 '미국 개척 시대'의 이미지를 심어준 작품이다. 척박한 대자연에 맞서 맨손으로 집을 짓고, 우물을 파고, 가족애로 역경을 이겨내는 잉걸스 가족의 이야기는 아름답다. 드라마로 만들어져 한국 안방극장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그런데 이 따뜻한 이야기에는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이 빠져 있다.
"그 초원은 원래 누구의 땅이었는가?"
소설 속에서 밤마다 잉걸스 가족을 공포에 떨게 했던 북소리와 함성. 로라의 눈에 '무섭고 낯선 존재'로 그려진 인디언들. 그들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 **오세이지족(Osage Nation)**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초원의 집』이 끝나는 지점에서, 진짜로 시작된다.
1870년대 초, 잉걸스 가족이 정착한 캔자스주 인디펜던스 인근의 대초원은 무주공산이 아니었다. 그곳은 미국 정부가 조약으로 보장한 **오세이지족의 합법적 보호구역(Osage Diminished Reserve)**이었다.
소설의 결말에서 잉걸스 가족은 "정부가 군대를 보내 정착민을 쫓아낸다"는 소식에 애써 지은 통나무집을 버리고 눈물을 흘리며 떠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잉걸스 가족을 억울한 피해자로 읽게 된다.
하지만 역사의 팩트는 정반대다.
잉걸스 가족을 포함한 백인 정착민들은 정부의 허가 없이 오세이지족 영토에 **무단 침입한 불법 점유자(squatter)**였다.
정부가 군대를 보낸 것은 오세이지족과 맺은 조약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즉, 소설 속 '억울한 퇴거'는 실은 불법 알박기에 대한 철거 집행이었던 셈이다.
밤마다 들려오던 그 '공포스러운 북소리'는, 자기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절박한 목소리였다.
물론 로라 잉걸스 와일더가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족의 시선으로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가족의 시선'이 수십 년간 전 세계에 유통되면서, 개척사의 어두운 절반은 초원의 풀숲 아래 묻혀버렸다.
잉걸스 가족 같은 불법 정착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들자, 미국 정부는 침입자들을 막는 대신 오히려 원주민을 압박하는 쪽을 택했다. 1870년, 오세이지족은 캔자스의 비옥한 대초원을 정부에 매각하고 남쪽 오클라호마 준주의 척박한 암석 지대로 이주하라는 조약을 강요받는다.
백인들의 계산은 뻔했다. "농사도 안 되는 자갈밭이니 저들이 뭘 하겠는가."
그러나 오세이지족 지도부는 이 굴욕적인 이주 협상에서 역사에 남을 한 수를 둔다. 계약서에 다음 조항을 못 박은 것이다.
"이 땅의 표면뿐 아니라, 지하에 있는 모든 광물 자원의 권리는 부족 전체의 공동 소유로 한다."
그리고 1890년대, 그 쓸모없다던 자갈밭 아래에서 미국 역사상 손꼽히는 거대 유전이 터진다.
석유 채굴권 배당금, 이른바 '헤드라이트(Headrights)'가 부족원 전원에게 지급되면서, 1920년대 초 오세이지족은 세계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집단이 되었다. 대저택에 살고, 백인 운전기사가 모는 고급차를 타고, 자녀를 유럽으로 유학 보내는 원주민들. 캔자스에서 쫓겨난 지 불과 50년 만의 일이었다.
역사가 이대로 끝났다면, 통쾌한 반전 드라마였을 것이다. 하지만 백인들의 탐욕은 초원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세이지족의 부(富)가 알려지자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카운티로 사기꾼, 사업가, 변호사,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이 몰려들었다.
첫 번째 약탈 도구는 '법'이었다. 당시 연방법은 원주민을 "재산을 스스로 관리할 능력이 없는 자"로 규정하고 백인 후견인(guardian) 을 지정하도록 했다. 백만장자 원주민이 자기 돈을 쓰려면 백인 후견인의 결재를 받아야 했고, 후견인들은 이 구조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재산을 빨아먹었다.
두 번째 도구는 훨씬 잔혹했다. 결혼, 그리고 살인.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오세이지 카운티에서는 부족원들이 연이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총에 맞아 강가에 버려진 여인
정체불명의 독극물(밀주 위스키에 섞인 독)로 서서히 죽어간 사람들
한밤중 폭발로 잿더미가 된 저택과 그 안의 부부
수법은 다양했지만 패턴은 하나였다. 백인 남성이 오세이지 여성과 결혼한다 → 처가 식구들이 차례로 죽는다 → 석유 채굴권이 상속을 통해 남편에게 집중된다.
더 끔찍한 것은 지역 사회 전체의 공모였다. 의사는 독살을 '원인 불명의 병사'로 진단서에 적었고, 장의사는 시신을 서둘러 묻었으며, 경찰과 판사는 수사를 뭉갰다. 사건을 파헤치던 백인 변호사와 사설탐정마저 달리는 기차에서 떠밀려 살해당했다. 공식 확인된 희생자만 60여 명. 학자들은 은폐된 죽음까지 포함하면 실제 희생자가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훗날 역사는 이 5년을 '공포의 시대(Reign of Terror)' 라 부른다.
지역 경찰도, 주 정부도 믿을 수 없었던 오세이지 부족 의회는 결국 연방 정부에 직접 도움을 요청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곳은 당시 신생 조직이던 수사국(BOI) — 훗날의 FBI였다.
초대 국장 J. 에드거 후버는 이 사건을 조직의 명운을 건 시험대로 삼았고, 전직 텍사스 레인저 출신의 요원 톰 화이트(Tom White) 를 파견했다. 요원들은 보험 판매원, 카우보이, 주술사로 위장 잠입해 수년간 지역 사회를 파고들었다.
수사 끝에 드러난 배후는 충격적이었다. 지역에서 '오세이지의 친구', '킹'으로 불리며 존경받던 유력자 윌리엄 K. 헤일(William K. Hale). 그는 조카 어니스트 버크하트를 오세이지 여성 몰리 버크하트와 결혼시킨 뒤, 몰리의 어머니와 자매들을 차례로 살해하게 해 채굴권을 한 가족에게 몰아넣는 설계도를 그린 장본인이었다. 몰리 자신도 '당뇨 치료'를 빙자한 독극물 주사로 서서히 살해당하던 중이었다.
헤일 일당은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FBI는 이 사건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기소된 것은 극히 일부의 살인뿐이었고, 수많은 죽음은 끝내 범인도, 진상도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혔다. 후견인 제도로 빨려나간 재산이 배상된 것도 아니었다.
이 실화는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영화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 2023)》 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알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어니스트를, 릴리 글래드스톤이 몰리를 연기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초원의 집』과 '공포의 시대'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하나의 비극이 시간 순서대로 이어진 것이다.
캔자스 대초원에 살던 오세이지족의 땅에 백인 정착민(잉걸스 가족 포함)이 무단 침입한다. — 『초원의 집』의 시대
밀려드는 정착민을 감당 못 한 정부가 오세이지족을 오클라호마 자갈밭으로 내쫓는다. — 1870년대
그 자갈밭에서 석유가 터져 오세이지족이 세계 최고 부자가 된다. — 1890~1920년대
그 부를 노린 백인들이 결혼과 살인으로 재산을 약탈한다. — 공포의 시대, 1921~1926
캔자스에서는 땅을 빼앗겼고, 오클라호마에서는 목숨과 석유를 빼앗겼다. 무대만 바뀌었을 뿐, 구조는 같았다. 법은 언제나 빼앗는 자의 편이었고, 이야기는 언제나 빼앗는 자의 시선으로 기록되었다.
『초원의 집』 속 로라의 가족이 흘린 눈물은 진짜였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초원 저편에서,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등지고 떠나던 오세이지족의 눈물은 소설에 기록되지 않았다. 우리가 '개척'이라 배운 역사의 절반은, 누군가에게는 '침탈'의 역사였다.
역사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사랑했던 이야기를 버리는 일이 아니다. 그 이야기가 서 있던 땅 밑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오클라호마의 자갈밭 아래 석유가 있었듯, 낭만적인 개척 서사의 아래에는 언제나 또 다른 진실이 흐르고 있다.
참고: 데이비드 그랜,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 / 로라 잉걸스 와일더, 『초원의 집』 시리즈 / 영화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마틴 스코세이지, 2023)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은 작가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작 소설이자, 이를 원작으로 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전설적인 미국 드라마입니다.
'초원의 집'이라는 제목은 보통 전체 시리즈를 통칭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소설 2권(국내 번역본 기준 1~2권 분량)과 드라마 초기 시즌의 중심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870년대 미국, 잉걸스 가족—아빠(찰스), 엄마(캐롤라인), 큰딸 메리, 둘째 로라, 아기 캐리—은 정들었던 위스콘신의 깊은 숲속 집을 떠납니다. 그곳이 점점 사람들로 붐비자, 아빠는 더 넓고 자유로운 땅을 찾아 서부로 향하기로 결심한 것이죠.
가족은 지붕이 덮인 마차(포장마차)를 타고 거친 강을 건너고 끝없는 초원을 지나 캔자스주의 대초원에 도착합니다. 아빠는 이웃인 에드워즈 씨의 도움을 받아 직접 통나무를 베어 조그만 집을 짓고, 우물을 파며 맨땅에서부터 개척자 삶을 시작합니다.
초원에서의 삶은 아름답지만 혹독한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연의 위협: 밤마다 집 주변을 에워싸는 늑대 무리와 마주하기도 하고, 온 가족이 모기에 물려 고열과 오한을 앓는 '말라리아(당시에는 상한 수박이나 밤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함)'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습니다.
원주민과의 갈등: 잉걸스 가족이 집을 지은 곳은 사실 인디언(오세이지족)의 영토였습니다. 인디언들과의 문화적 차이로 긴장감이 감돌고, 밤마다 들려오는 그들의 북소리와 함성에 가족들은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빠의 유연한 태도와 친근했던 오세이지족 추장의 중재로 다행히 큰 충돌은 면하게 됩니다.
겨우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할 무렵,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정부에서 군대를 보내 인디언 영토에 불법으로 들어온 백인 정착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결국 아빠는 군대에 의해 쫓겨나기 전, 애써 지은 통나무집과 농장을 뒤로한 채 다시 마차에 짐을 싣고 또 다른 땅(미네소타)을 향해 길을 떠나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 이후 시리즈에서는 미네소타의 플럼 크릭, 사우스다코타의 디스멧 등으로 계속 이주하며 로라가 성장하고 결혼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방송용 드라마는 가족이 미네소타주의 '월넛 그로브(Walnut Grove)'라는 마을에 정착한 이후의 이야기를 길게 다룹니다.
드라마에서는 마을의 학교와 교회, 이웃들과의 에피소드가 중심이 됩니다. 특히 부유하고 이기적인 넬스 올슨 가문의 딸 '넬리 올슨'과 말괄량이 '로라'의 티격태격하는 라이벌 관계, 큰딸 메리가 열병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 비극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 그리고 마을에 찾아오는 가뭄과 전염병 등 온갖 역경을 가족애와 공동체의 힘으로 따뜻하게 이겨내는 휴먼 드라마로 전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