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ct 17, 2026 · @Geo Kim
부리야트족(Buryats, Буряты)은 러시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일대에 사는 몽골계 원주민으로, 러시아에 약 45만 명, 몽골과 중국 내몽골에도 수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바이칼 서쪽의 서부(치스바이칼) 부리야트와 동쪽의 동부(트란스바이칼) 부리야트로 나뉘며, 서부는 샤머니즘 전통을 비교적 오래 지켰고 동부는 18세기 이후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의 신화는 세 층위가 겹쳐 있는 거대한 서사 체계입니다.
시베리아 원시 수렵 샤머니즘: 동물 조상, 주인 정령, 샤먼의 중개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텡그리(Tengri, 천신) 신앙: 영원한 푸른 하늘과 99명의 하늘 신
후대에 유입된 티베트 불교: 게세르 전설의 불교적 윤색, 부르한(Burkhan, 부처·신)이라는 호칭
앞서 살펴본 우데게족이 ‘타이가 숲과 사냥’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했다면, 부리야트족은 ‘푸른 하늘과 바이칼의 성수(聖水), 그리고 영웅들의 대서사시’를 중심으로 선과 악이 맞서는 이원론적 우주관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이칼 최대의 섬 알혼섬(Olkhon, 부리야트어 오이혼)이 있습니다. 섬 서안에 솟은 샤먼 바위(부르한 곶, Cape Burkhan)는 하늘의 신들과 지상의 정령들이 만나는 신성한 축으로 여겨지며, 지금도 여름마다 샤먼 수십 명이 모이는 타일라간(Tailagan) 의식이 열리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거점입니다.
부리야트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하늘의 신들인 텡그리(Tengri)가 선과 악, 빛과 어둠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대립한다는 점입니다. 하늘 신은 모두 99명으로, 서쪽 하늘에 55명, 동쪽 하늘에 44명이 삽니다. 홀수 55가 짝수 44보다 하나 더 많다는 사실 자체가, 선이 악을 아슬아슬하게 이긴다는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구분 | 서방의 55신 (바룬 텡그리 / Baruun Tengri) | 동방의 44신 (준 텡그리 / Zuun Tengri) |
|---|---|---|
성격 | 선(善), 빛, 흰색, 따뜻함, 생명과 풍요, 창조 | 악(惡), 어둠, 검은색, 추위, 질병과 죽음, 파괴 |
수장 | 한 호르무스타(Khan Khormusta) / 에세게 말란(Esege Malan) | 아타이 울란(Atai Ulaan) / 에를리크 한(Erlik Khan, 지하 세계의 왕) |
인간과의 관계 | 인간과 가축을 보호하고, 위기에 처하면 영웅을 지상에 내려보냄 | 재앙과 전염병을 퍼뜨리고 인간의 영혼을 앗아감 |
관련 샤먼 | 백색 샤먼(사가안 보 / Sagaan böö): 하늘과 선신에게 기원하고 축복을 내림 | 흑색 샤먼(하라 보 / Khara böö): 악령을 달래고 지하 세계와 교섭하여 병을 고침 |
99명의 텡그리 위에는 두 개의 근원적 원리가 있습니다.
영원한 푸른 하늘(후헤 문헤 텡그리 / Khukhe Munkhe Tengri): 개별 신들 위에 존재하는 최상위의 우주 원리이자 하늘 그 자체입니다. 샤먼이 올리는 가장 큰 제사가 이 하늘에 말을 바치는 의식이었습니다.
어머니 대지(에투겐 / Etugen): 하늘의 아버지 신에 대응하는 대지의 여신으로, 모든 생명과 식물을 길러내는 풍요의 근원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동방 44신이 단순한 ‘악당’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동부 부리야트의 전승에서는 에를리크 한이 이끄는 동쪽 신들이 죽은 자를 심판하는 정의(正義)의 권한도 지닙니다. 선신은 생명을 주고, 악신은 거두어 가되 질서를 지킵니다. 이 긴장이 부리야트 우주의 균형을 이룹니다.
부리야트의 기원 신화는 물·늑대·백조·독수리라는 네 가지 상징을 축으로 전개됩니다.
우데게족 등 시베리아 여러 민족과 공유하는 신화입니다. 태초에 세상이 거대한 바다(바이칼 호수의 원형)였을 때, 창조신 부르한(Burkhan)이 아비새(또는 오리)에게 물속으로 잠수해 붉은 진흙을 가져오게 하여 그 진흙으로 대지를 빚었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신화에까지 퍼져 있는 ‘대지 잠수부(Earth-diver)’ 모티프의 시베리아판입니다.
『몽골비사』와 맥을 같이하는 시조 설화입니다. 하늘의 명을 받고 태어난 푸른 늑대 부르테 치노(Börte Chino)와 흰 암사슴 고아 마랄(Goa Maral)이 큰 호수(바이칼)를 건너와 결합하여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늑대와 사슴, 곧 포식자와 피식자가 한 핏줄의 두 조상이라는 점이 유목민 세계관의 핵심을 보여 줍니다.
사냥꾼 호리도이(Khoridoi)가 바이칼 호숫가에서 목욕하던 하늘의 백조 세 마리 중 한 마리의 날개옷을 숨겨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11명의 아들이 태어났고, 이들이 호리 부리야트 11개 씨족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훗날 아내는 날개옷을 되찾아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이 때문에 부리야트인들은 지금도 백조를 절대 사냥하지 않으며, 봄에 날아오는 백조에게 우유나 차를 뿌려 예를 표합니다. 백조는 ‘하늘에서 온 어머니’이고, 부족은 그 자손입니다.
신들이 인간을 돕기 위해 처음으로 지상에 샤먼의 능력을 보냈을 때, 인간들은 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이에 신들은 독수리(부르구트 / Burgut)에게 샤먼의 지혜를 주어 바이칼의 알혼섬으로 보냈고, 이 독수리가 인간 여성과 결합하여 최초의 인간 샤먼을 낳았습니다. 알혼섬이 오늘날까지 샤머니즘의 성지로 남은 신화적 근거이며, 부리야트 샤먼이 독수리 깃털 장식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리야트 신화의 꽃은 음유시인 울리게르친(üligershin)들이 구전해 온 영웅 서사시 울리게르(Üliger)이며, 그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 『아바이 게세르(Abai Geser)』입니다. 울리게르 한 편은 짧게는 2천~3천 행, 길게는 2만 5천 행에 이르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견주어집니다. 게세르 외에도 『알람지 메르겐』, 『쇼노 바토르』 같은 영웅담이 전해집니다.
게세르 이야기 자체는 티베트·몽골의 ‘게사르 왕’ 전설에서 왔지만, 부리야트판에는 다른 지역 판본에 없는 샤머니즘 신들의 전쟁을 그린 서막(프롤로그)이 붙어 있습니다. 불교의 영향이 적었던 서부 부리야트(에히리트-불라가트, 운가 판본)에서 가장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었고, 1906년 몽골학자 잠차라노가 서사시인 만슈드 이메게노프에게서 채록한 에히리트-불라가트 판본이 대표적 기록본입니다.
이 서막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뼈대는 세 단계입니다.
천상의 전쟁과 패배한 악신: 서방 55신의 수장 한 호르무스타가 동방 44신의 수장 아타이 울란과 싸워 승리합니다. 한 호르무스타의 아들 부헤 벨릭테가 던진 검은 창이 아타이 울란의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부수었고, 신들은 그의 몸을 찢어 지상으로 던져 버립니다.
괴물 망가드하이의 출현: 지상에 떨어진 아타이 울란의 시체 조각에서 여러 머리를 가진 괴물 망가드하이(Mangadkhai)와 온갖 질병의 악귀들이 태어나 인간 세상을 파괴합니다. 가뭄과 역병, 가축의 떼죽음이 이 ‘찢긴 악신의 조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영웅의 강림: 고통받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한 호르무스타의 둘째 아들, 천상의 신 부헤 벨릭테(Bukhe Beligte)가 인간의 몸으로 환생합니다. 그가 바로 아바이 게세르입니다. 게세르는 하늘에서 내려온 마법의 명궁과 하늘을 나는 붉은 말을 타고, 33명의 용사(바토르)와 함께 수많은 망가드하이를 물리치며 지상에 평화를 되찾아 줍니다.
악신의 시체 조각이 괴물이 되고, 선신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그 괴물을 처단한다는 구조는 결국 하늘의 전쟁이 지상에서 되풀이된다는 부리야트 이원론의 서사적 표현입니다.
『아바이 게세르』의 본편은 아타이 울란의 조각에서 태어난 다두(多頭) 괴물 망가드하이들을 하나씩 물리치는 연대기적 모험담입니다. 머리의 수가 늘어날수록 시련도 커집니다.
천상의 신 부헤 벨릭테는 지상에 내려가기 전, 인간 세상의 더러움과 악독함을 견디기 위해 일부러 가장 볼품없는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지상의 노부부에게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누사타이 누르가이(Nusatai Nurgai, 콧물 흘리는 코찔찔이)’라 불렸습니다. 하루 종일 화덕 옆 잿더미에서 뒹구는 어리숙한 아이 같았지만, 사실은 요람에 누운 채 손가락으로 괴물 까마귀와 악귀의 목을 비틀어 죽이는 신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하늘의 아버지 한 호르무스타가 붉은 갈기의 신마 벨리겐 헤에르(Beligen Kheer)와 천상의 대장장이가 벼린 검은 강철 활과 화살, 황금 투구를 내려보냅니다. 그가 말을 타고 갑옷을 입는 순간, 추하고 어리숙한 껍질을 벗고 눈부신 거인 영웅 ‘아바이 게세르 보그도 한’으로 각성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 가장 높은 자리로 오른다는 이 구조는 유라시아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숨은 영웅’ 모티프입니다.
게세르가 정식으로 맞선 첫 번째 거대 망가드하이는 황금빛 비늘과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알탄 시라(Altan Shira)입니다. 알탄 시라는 게세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영지를 습격해 백성과 가축을 약탈하고, 게세르의 둘째 아내이자 숲의 여전사·샤먼인 알마 메르겐(Alma Mergen)을 납치합니다.
분노한 게세르는 신마를 타고 수십 일 거리를 단숨에 달려 괴물의 본거지에 닿습니다. 두 존재가 맞붙자 산이 무너지고 계곡이 패일 정도의 육탄전이 벌어지지만, 칼로 머리를 베어도 잘린 목에서 검은 피와 함께 새 머리가 즉시 돋아납니다.
해법은 시베리아·몽골 신화의 전형적인 모티프인 ‘외부의 영혼(外魂)’에 있었습니다. 괴물의 진짜 생명은 몸 밖의 다른 사물에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천상의 세 누이와 알마 메르겐의 지혜로 괴물의 생명이 본거지 깊숙이 감춰진 ‘일곱 마리 메추라기(또는 황금 상자 속의 벌레)’에 있음을 알아낸 게세르는, 백발백중의 신궁을 당겨 괴물의 숨통과 외부의 영혼을 한 화살에 꿰뚫어 아홉 머리를 모두 재로 만듭니다.
서사시에서 가장 극적인 위기와 역전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불타는 화염의 괴물 갈 둘메(Gal Dulme)는 정면 승부로는 게세르를 이길 수 없음을 알고 교활한 함정을 팝니다.
여기에 게세르의 삼촌 초통(Chotong)이 끼어듭니다. 탐욕스럽고 비열한 초통은 조카를 시기해 늘 망가드하이와 내통하는 인물입니다. 초통의 안내를 받은 괴물 진영은 미녀로 둔갑한 요괴를 게세르에게 접근시켜 ‘바르타(Barta)’라는 망각의 독주를 마시게 합니다. 독주를 마신 게세르는 자신이 누구인지, 고향과 아내가 누구인지 모든 기억을 잃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마법에 걸려 털이 빠진 초라한 당나귀로 변해, 괴물의 성에서 맷돌을 돌리고 짐을 나르는 노예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 사이 고향은 초토화되고, 그를 지키던 33명의 용사도 전사합니다.
구원자는 아내 알마 메르겐입니다. 뛰어난 여궁수이자 샤먼인 그녀는 남장을 하고 단신으로 적진에 잠입합니다. 하늘의 수호신들과 천상의 세 누이에게서 받은 성스러운 해독수와 청동 거울을 당나귀에게 뿌리고, 주문이 담긴 채찍으로 내리치자 당나귀 가죽이 찢어지며 게세르가 기억과 힘을 되찾습니다. 그는 열두 머리의 갈 둘메를 일격에 제압해 갈기갈기 찢고, 하늘의 생명수 아르샨(arshan)을 구해 와 죽은 33명의 용사를 모두 되살립니다.
비열한 삼촌 초통은 이때도 목숨을 구걸해 비굴하게 살아남습니다. 세상의 소인배와 악의 씨앗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로브사가(Lobsaga)는 입을 벌리면 하늘과 땅이 막힐 정도로 거대한 스물다섯 머리의 거인 망가드하이입니다. 로브사가는 게세르와 싸우던 중 거대한 숨을 들이마셔 게세르와 신마를 통째로 삼켜 버립니다.
괴물은 승리를 기뻐하지만, 게세르는 뱃속에서 거대한 강철의 모습으로 변신해 괴물의 내장과 간, 심장을 안에서부터 베고 불을 지릅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로브사가가 게세르를 토해 내려 입을 벌린 순간, 게세르는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오며 스물다섯 개의 머리를 단숨에 베어 버립니다. 괴물에게 삼켜졌다가 안에서 뚫고 나오는 이 모티프 역시 전 세계 영웅담에 널리 퍼진 ‘삼킴과 재탄생’의 원형입니다.
게세르의 모험은 단순한 괴물 퇴치담이 아니라, 시베리아 유목민이 겪은 실제 위협과 그 극복 방식을 신화의 언어로 옮긴 것입니다.
요소 | 신화적 의미와 역할 |
|---|---|
망가드하이 (Mangadkhai) | 혹독한 시베리아의 자연재해, 전염병, 유목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민족 침략자를 형상화한 존재. 인간이 질서를 세운 공간 바깥, 혼돈의 세계에 산다. 머리 수가 늘수록 시련의 강도가 높아진다. |
외부의 영혼 (外魂) | 괴물의 생명이 몸 밖의 사물(메추라기, 벌레, 상자)에 숨겨져 있다는 모티프. 힘이 아니라 지혜로 약점을 찾아야 이길 수 있다는 교훈. |
신궁(神弓)과 화살 | 육탄전이 무승부로 끝나갈 때 최종적으로 괴물의 명줄을 끊는 절대 무기. 화살이 살아 움직여 스스로 약점을 찾아 날아가기도 한다. |
신마 벨리겐 헤에르 |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하고 미래를 예언하며, 주인이 위기에 처하면 하늘로 날아올라 구출하는 영적 동반자. |
33명의 용사(바토르) | 게세르와 함께 싸우는 전사 집단. 전사했다가 생명수로 되살아나는 장면은 공동체의 재생을 상징한다. |
천상의 세 누이와 아내 알마 메르겐 | 수동적인 피보호자가 아니라, 마법과 활솜씨로 죽어 가는 게세르를 구원하는 샤먼적 구원자. 여성 샤먼의 전통이 강했던 부리야트 사회의 반영. |
삼촌 초통 | 안에서 배신하는 소인배. 영웅이 아무리 강해도 공동체 내부의 탐욕과 시기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 |
한 가지 역사적 사실도 덧붙일 만합니다. 『게세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 당국이 일부 구절을 반(反)러시아적이라고 오해해 몇 해 동안 금지했고, 그 사이 새 울리게르친이 양성되지 못해 구전 전통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후 복권되어 1990년대부터는 부리야트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다시 자리 잡았습니다.
부리야트인들에게 자연의 모든 장소에는 주인 정령 에진(Ezhin)이 있습니다. 산, 강, 호수, 고개, 심지어 집 안의 화덕에도 저마다 주인이 있고, 사람은 그 주인에게 예를 갖추고 허락을 구해야 합니다.
불의 정령 사히아다이 노욘(Sakhiadai Noyon): 가정의 화덕에 깃든 정령입니다. 불에 쓰레기를 던지거나 날카로운 것을 찌르는 것, 불을 넘어 다니는 것을 엄격히 금합니다. 새 술이나 음식을 먹기 전 첫 몫을 불에 바치는 풍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바얀 바이칼(Bayan Baikal, 풍요로운 바이칼): 바이칼 호수 자체가 신격이며, 바다의 신 우산 노욘(Usan Noyon)이 다스립니다. 호수에 침을 뱉거나 더러운 것을 버리는 행위는 큰 금기입니다.
부하 노욘 바바이(Bukha Noyon Baabai): 회색 황소의 모습을 한 신으로, 서부 부리야트 부족들의 강력한 수호신이자 조상신으로 숭배받습니다. 황소가 소녀와 결합해 부족의 조상을 낳았다는 전승도 있습니다.
고갯마루나 강가, 신성한 바위 근처에는 돌무더기 **오보(Oboo)**를 쌓습니다. 우리의 성황당 돌탑과 매우 닮은 성소로, 지나는 이는 돌 하나를 보태고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돕니다. 그 곁에는 말뚝 모양의 기둥 **세르게(Serge)**를 세우는데, 이는 세계수를 상징하며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말을 묶어 두는 곳입니다.
여기에 푸른 천 하닥(khadag)을 묶고 보드카나 우유를 뿌리는 무르겔(Mürgel) 의식을 행해 정령들의 안녕을 빕니다. 알혼섬 부르한 곶의 세르게 13개는 13명의 알혼 수호신을 상징하며, 오늘날 바이칼을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부리야트 신앙의 풍경입니다.
부리야트 신화를 읽다 보면 낯선 이름들 사이로 익숙한 장면이 계속 겹쳐 보입니다. 바이칼과 한반도는 북방 유라시아 샤머니즘이라는 같은 문화권에 속했고, 그 흔적이 신화의 뼈대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부리야트 신화 | 우리 신화·민속 | 공통 구조 |
|---|---|---|
백조 처녀 설화: 사냥꾼 호리도이가 백조의 날개옷을 숨겨 아내로 삼고, 11명의 아들이 11개 씨족의 시조가 됨. 아내는 날개옷을 되찾아 하늘로 돌아감 | 「선녀와 나무꾼」: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옷을 숨겨 아내로 삼고, 아이를 낳은 뒤 날개옷을 되찾은 선녀가 하늘로 돌아감 | 하늘 여인과 지상 남자의 결혼, 날개옷 절취, 하늘 귀환. 부리야트판은 ‘씨족 기원 신화’, 우리 판은 ‘민담’으로 남았지만 뼈대는 같음 |
천상의 신 부헤 벨릭테가 아버지 한 호르무스타의 명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영웅 게세르가 됨 | 환인의 아들 환웅이 천부인 3개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옴 | 천손강림(天孫降臨). 하늘 신의 ‘아들’이 인간을 구하러 내려온다는 구조 |
독수리가 인간 여성과 결합해 최초의 샤먼을 낳음 / 회색 황소 부하 노욘이 조상신 | 곰(웅녀)이 사람이 되어 환웅과 결합해 단군을 낳음 / 알에서 난 주몽·혁거세 | 동물 조상 신화. 하늘(남성)과 땅의 동물(여성)이 결합해 시조·샤먼 왕이 태어남 |
게세르는 하늘이 내린 신궁(神弓)으로 괴물의 명줄을 끊음 | 주몽(朱蒙)은 부여 말로 ‘활 잘 쏘는 사람’. 동이(東夷)의 ‘夷’ 자 자체가 큰 활(大弓)을 뜻함 | 활을 영웅의 핵심 표지로 삼는 북방 기마·수렵 문화 |
콧물 흘리는 바보 소년 누사타이 누르가이가 각성해 영웅이 됨 |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 명장이 됨. 알에서 난 주몽이 천대받다 나라를 세움 | ‘숨은 영웅’ 모티프.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
신마 벨리겐 헤에르가 말을 하고 주인을 하늘로 구출함 | 혁거세의 탄생을 알린 흰 말, 천마총의 천마도 |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말(天馬) |
죽은 33용사를 생명수 아르샨으로 되살림 / 천상의 세 누이가 게세르를 구원 | 바리공주가 서천의 생명수로 부모를 살리고 무조(巫祖)가 됨 / 삼신할머니 | 생명수와 여성 샤먼의 구원. ‘3’의 신성성 |
돌무더기 오보에 돌을 보태고 푸른 하닥을 묶음 / 세계수 기둥 세르게 | 서낭당 돌탑에 돌을 얹고 오색천을 묶음 / 솟대·신단수·당산나무 | 고갯마루의 돌탑 성소와 하늘을 잇는 기둥(우주목) |
첫 술과 우유를 불과 하늘에 뿌리는 무르겔 | 음식을 먹기 전 한 술 떠서 던지는 고수레, 산신제의 헌주 | 정령에게 먼저 바치는 ‘첫 몫’의 예법 |
백색 샤먼(하늘 기원)과 흑색 샤먼(병 치료·저승 교섭) | 강신무와 세습무, 굿의 ‘천신굿’과 ‘진오귀굿’ | 하늘을 섬기는 기능과 죽음·병을 다루는 기능의 분화 |
이 가운데 백조 처녀 설화와 서낭당·오보의 유사성은 학계에서도 널리 인정되는 ‘북방 샤머니즘 공통 유산’입니다. 반면 천손강림이나 활 영웅 모티프는 세계 여러 신화에 두루 나타나므로, 직접 전파의 증거라기보다 같은 생태·문화 환경이 낳은 평행 현상으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부리야트어는 몽골어족에 속합니다. 한국어와 몽골어의 관계는 두 층위로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구조적 닮음과, 역사적 접촉으로 들어온 차용어입니다.
한국어와 부리야트어(몽골어)는 문장 짜임이 놀랄 만큼 같습니다.
어순이 주어-목적어-동사(SOV): “나는 말을 탄다”와 같은 순서로 말합니다.
교착어: 어근 뒤에 조사와 어미를 차례로 붙여 뜻을 만듭니다. 명사 뒤에 격조사가 오고, 동사 뒤에 시제·존대 어미가 이어지는 방식이 같습니다.
모음조화: 부리야트어는 지금도 양성·음성 모음이 한 낱말 안에서 어울립니다. 한국어도 중세에는 엄격했고 지금은 의성어·의태어(졸졸/줄줄, 찰랑/철렁)와 어미(-아/-어)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문법적 성(性)과 관사가 없고, 관계대명사 대신 관형형 어미로 꾸밉니다.
존대 체계와 후치사: 전치사 대신 명사 뒤에 붙는 조사(후치사)를 씁니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20세기 내내 한국어·몽골어·튀르크어·퉁구스어를 하나의 ‘알타이어족’으로 묶는 가설이 유력했습니다. 그러나 기초어휘와 규칙적 음운 대응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오늘날 주류 언어학은 계통적 친족 관계는 미증명으로 보고 대신 오랜 접촉으로 구조가 닮아진 ‘언어 연합(Sprachbund)’으로 설명하는 쪽이 많습니다. 즉 ‘닮았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한 조상에서 갈라졌다’는 결론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13~14세기 원 간섭기 약 100년 동안 고려 왕실은 몽골 황실과 혼인했고, 말·매·궁중 생활 분야의 몽골어가 한국어에 들어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한국어 | 몽골어 어원 | 뜻 |
|---|---|---|
가라말 | qara(검다) + 말 | 검은 말 |
구렁말 | küreng(밤색) + 말 | 밤색 말 |
조랑말 | ǰoro mori(측대보로 걷는 말) | 작은 말 |
보라매 | boro(회색) + 매 | 그해 태어나 길들인 사냥매 |
송골매 | šongqor | 매의 한 종류 |
수라(水剌) | šülen(국, 음식) | 임금의 진지 |
오랑캐 | Uriyangqai(몽골 북부 부족명) | 북방 이민족 |
벼슬아치·장사치의 ‘-치’ | -či(…하는 사람) | 직업 접미사(차용설이 유력) |
부리야트어에서도 ‘검다’는 хара(하라), ‘회색’은 боро(보로), ‘매’는 шонхор(숑호르)로, 위 차용어의 뿌리말이 그대로 쓰입니다. 흑색 샤먼의 ‘하라 보(Khara böö)’와 우리말 ‘가라말’이 같은 낱말에서 나온 셈입니다.
신화의 핵심어에서도 흥미로운 대응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텡그리(Tengri) ↔ 단군(檀君)·당골: 최남선은 『불함문화론』(1925)에서 ‘단군’이 하늘을 뜻하는 북방어 ‘텡그리(당굴)’의 음역이며, 호남 지방에서 무당을 부르는 말 ‘당골(단골)’이 그 흔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부리야트어 тэнгэри(텡게리)는 지금도 ‘하늘, 하늘 신’을 뜻합니다.
부르한(Burkhan) ↔ 불함(不咸)·밝: 『산해경』이 백두산을 ‘불함산(不咸山)’이라 적은 것을 최남선은 ‘밝(光明)’의 음역으로 보았고, 몽골·부리야트의 창조신 호칭 ‘부르한’과 같은 계열로 연결했습니다.
노욘(Noyon, 귀인) ↔ 나리: 정령 이름에 붙는 ‘노욘’이 우리말 ‘나리(나으리)’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다만 이 세 가지는 모두 가설입니다. ‘단군=텡그리’ 설은 일제강점기 민족사학의 맥락에서 나왔고, 현대 국어학과 사학은 흥미로운 가능성으로 다루되 정설로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차용어 표의 낱말들이고, 신화 어휘의 대응은 ‘같은 하늘 신앙권 안에서 닮은 말이 오갔을 가능성’ 정도로 읽는 것이 정확합니다.
서사시 제목에 붙은 ‘아바이(Абай)’부터가 우리 귀에 낯설지 않습니다. 부리야트어 аба(아바)는 ‘아버지’이고, 여기에 애칭·호칭 접미사 -й(-이)가 붙은 абай(아바이)는 아버지나 집안 어른을 다정하게 부르는 말입니다. 서사시의 정식 제목 『Абай Гэсэр хүбүүн(아바이 게세르 후분)』은 글자 그대로 ‘아바이 게세르 아들’, 곧 ‘어르신 게세르, 아버지 같은 게세르’라는 존칭입니다. 백성을 지키는 영웅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몽골어 аав(아브), 카자흐어 아바이(Абай, 시인 아바이 쿠난바예프의 이름), 고대 튀르크어 aba(조상·아버지), 만주어 ama(아마)가 모두 같은 계열입니다.
우리말 쪽을 보면 겹침이 더 뚜렷합니다.
시대·지역 | 형태 | 비고 |
|---|---|---|
15세기 중세국어 | 아비(父), 어미(母) | 『훈민정음 해례』 용자례. 평칭 |
15세기 중세국어 | 아바님 | 『용비어천가』·『월인석보』. ‘아바’+존칭 ‘-님’ |
조선 궁중어 | 아바마마 | ‘아바’+‘마마’ |
현대 표준어 | 아버지 | ‘아바’+호칭 접미사 ‘-지’ → 아바지 → 아버지 |
함경도 방언 | 아바이 | ‘아바’+호칭 접미사 ‘-이’. 아버지, 할아버지, 나이 든 남자 어른 |
평안도 방언 | 아바지 | 모음 변화 이전 형태가 남음 |
경상도 방언 | 아배, 아부지 | |
제주 방언 | 아방 |
분석하면 이렇습니다. 중세국어의 어근은 ‘아바/아비’이고, 뒤에 어떤 말이 붙느냐에 따라 아바님(존칭), 아바지(호칭), 아바이(호칭)로 갈라졌습니다. 그중 함경도의 아바이는 어근 ‘아바’에 호칭 접미사 ‘-이’가 붙은 형태로, 부리야트어 아바이(абай)와 소리도, 짜임(어근 ‘아바’+접미사 ‘-이’)도, 쓰임(아버지이자 어른 남성에 대한 존칭·애칭)도 일치합니다. 함경도는 한반도에서 만주·시베리아와 가장 가까운 땅이고, 속초 ‘아바이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우리 곁에도 남아 있습니다. 같은 함경도 방언에서 할머니를 ‘아매’라 부르는 것도 만주어의 ama(아버지)·eme(어머니)와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롭습니다.
다만 여기에도 단서가 필요합니다. ‘아바·아빠·파파·바바’처럼 입술소리와 ‘아’로 된 아버지 말은 아기가 가장 먼저 내는 소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전혀 무관한 언어들에서도 비슷하게 생깁니다(아랍어 아바, 조지아어 마마=아버지). 따라서 어근 ‘아바’가 같다는 것만으로 친족 관계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눈여겨볼 것은 접미사까지 포함한 ‘아바이’라는 완성형이 같은 뜻으로 쓰인다는 점과, 그것이 하필 북방과 접한 함경도에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오랜 접촉으로 호칭 체계 자체가 닮아 갔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입니다.
그러니 『아바이 게세르』를 우리말로 옮기면 ‘아바이 게세르’ 그대로가 가장 좋습니다. 함경도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아바이가 말이다…” 하고 운을 떼는 그 어조로, 부리야트의 울리게르친도 수만 행의 노래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부리야트와 우리는 같은 북방 샤머니즘의 신화 문법(하늘 숭배, 날개옷 여인, 돌탑 성소, 첫 몫 바치기)을 공유하고, 언어는 같은 구조를 가졌으며, 고려 시대의 접촉으로 말과 매와 궁중의 낱말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서사시의 이름 ‘아바이’는 함경도 방언 속에 같은 모습으로 살아 있습니다. 피가 같은지는 아직 모르지만,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이야기해 온 이웃인 것은 분명합니다.
‘게세르’는 바이칼 일대에만 머문 이름이 아닙니다. 이 글은 바이칼·북유라시아 샤머니즘의 영웅 호칭 ‘게세르’가 남쪽으로 몽골·티베트·간다라를 거쳐 페르시아와 로마의 ‘카이사르’가 되고, 동쪽으로 신라의 왕호 ‘거서간’에 닿았다는 북방 기원설의 관점에서 그 경로를 그립니다. 바이칼의 게세르 서사가 하늘 전쟁과 괴물 퇴치라는 가장 오래된 샤머니즘 신화층을 품고 있다는 점이 이 관점의 출발점입니다.
다만 학계의 통설(카이사르 어원설)은 같은 사슬을 반대 방향으로 읽습니다. 로마의 황제 칭호 ‘카이사르’가 실크로드를 타고 동쪽으로 와서 티베트·몽골·부리야트의 영웅 이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설이 근거로 삼는 연대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페르시아·튀르크의 카이사르(Qayṣar): 비잔틴과 접촉한 페르시아어·아랍어·튀르크어에 ‘카이사르’가 로마 황제를 뜻하는 말로 들어왔습니다.
프로모 케사로(Fromo Kesaro, 8세기):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카불·간다라를 다스리던 튀르크계 왕이 스스로를 ‘로마의 카이사르(Fromo Kesaro)’라 칭하고 동전에 새겼습니다. 그는 739~745년 사이 아랍군을 격파했고, 호탄 왕의 장인이었습니다. 이 승리가 게사르 서사시의 역사적 핵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에 가까운 견해입니다.
프롬 게사르(Phrom Gesar, 티베트, 10세기): 티베트 문헌에 ‘사방의 왕’ 가운데 하나로 ‘프롬(크롬) 게사르’가 등장합니다. 프롬은 이란어 *frōm/hrōm, 곧 ‘로마’입니다. 티베트 동부 캄 지방에서 『링 게사르』 서사시가 꽃을 피웠습니다.
게세르 한(Geser Khan, 몽골): 티베트 불교와 함께 몽골에 전해졌고, 1716년 북경에서 목판 인쇄된 『게세르 한』이 몽골어로 인쇄된 최초의 서사시가 되었습니다.
아바이 게세르(부리야트): 바이칼의 부리야트인들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되, 샤머니즘의 하늘 전쟁을 서막으로 덧붙이고 영웅을 ‘아바이(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칼미크, 투바, 라다크(케사르), 발티, 훈자(키세르), 몽구르, 유구르에도 각자의 판본이 있습니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게사르 서사 전통’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두 관점이 갈리는 지점은 ‘기록’과 ‘구전’의 무게입니다. 통설은 동전과 문헌에 남은 연대(로마 기원전 1세기 → 간다라 8세기 → 티베트 10세기 → 몽골 1716년)를 따릅니다. 북방 기원설은 문자 기록이 늦을 뿐 구전 서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부리야트판의 샤머니즘 서막이 티베트판에 없는 가장 오래된 층이라는 점을 듭니다. 티베트학자 프랑케처럼 게사르를 산스크리트 케사린(kesarin, 갈기 달린 자·사자)에서 찾는 제3의 설도 있습니다. 이름의 뿌리가 어디든, 이야기의 뼈대가 북방 샤머니즘의 고층이라는 데는 양쪽이 일치합니다.
『삼국사기』는 신라 시조 혁거세의 왕호를 거서간(居西干)이라 적고, ‘거슬한(居瑟邯)’이라고도 하며 진한 사람들의 말로 왕 또는 귀인을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이 ‘거서간’이 ‘게세르 한(Geser Khan)’과 같은 말이라는 주장이 국내 일부 연구자와 재야 사학계에서 제기되어 왔습니다. 소리의 닮음은 분명합니다. 거서(居西)와 게세르, 간(干)과 한(Khan)이 그대로 포개집니다.
쟁점 | 거서간=게세르 한 설 | 통설 |
|---|---|---|
거서(居西)의 뜻 | 게세르·케사르의 음역 | 거수(渠帥, 우두머리) 또는 ‘처음·으뜸’을 뜻하는 고유어 |
간(干)의 뜻 | 몽골·튀르크의 칸(Khan) | 마립간·각간의 ‘간’과 같은 북방계 수장 칭호. 칸과의 친연성은 통설도 인정 |
시기 | 북방 초원에서 일찍이 들어온 칭호 | 혁거세 즉위는 기원전 57년. 카이사르가 중앙아시아 칭호가 된 것은 그보다 수백 년 뒤 |
근거 | 음운의 일치, 알에서 난 탄생·흰 말 등 초원 신화와의 유사성 | 문헌·고고학적 전파 증거 없음 |
어느 설을 택하느냐에 따라 거서간의 자리가 달라집니다. 북방 기원설을 따르면 ‘게세르’는 기원전부터 북방 초원에 있던 호칭이므로, 기원전 57년 신라의 ‘거서간’이 그 동쪽 끝에 놓이는 데 연대의 모순이 없습니다. 반면 통설을 따르면 간다라 8세기·티베트 10세기보다 거서간이 800년 이상 앞서므로 연결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간(干)’이 칸(Khan) 계열의 북방 칭호라는 점은 양쪽 모두 인정하며, 문헌·고고학적 전파 증거가 아직 없다는 점에서 이 글은 거서간을 점선으로 그려 두었습니다.
다만 가설이 던지는 질문은 유효합니다. 혁거세 신화는 알에서 태어난 왕, 하늘에서 내려온 흰 말, ‘밝은 누리(弗矩內)’라는 이름까지 초원 신화의 문법으로 짜여 있습니다. 게세르가 로마에서 바이칼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신라의 왕호에 북방의 숨결이 닿았을 가능성 자체를 닫아 둘 이유는 없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것과 없었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리야트 신화를 한 줄로 요약하면 ‘서쪽 55신과 동쪽 44신의 끝나지 않는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을 지상에서 대신 치르는 영웅의 이야기’입니다. 선이 악보다 꼭 하나 더 많다는 99라는 숫자, 찢긴 악신의 조각이 괴물이 된다는 설정, 몸 밖에 숨긴 영혼을 찾아내야 괴물을 이긴다는 지혜의 모티프는 모두 혹독한 시베리아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유목민의 세계 해석입니다.
이 신화는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닙니다. 부리야트인들은 지금도 백조를 쏘지 않고, 고갯길 오보에 돌을 보태며, 첫 술잔을 불과 하늘에 뿌립니다. 알혼섬에서는 매년 여름 샤먼들이 모여 타일라간을 열고, 『게세르』는 소련 시대의 금지를 넘어 민족의 서사시로 되살아났습니다. 바이칼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 하늘의 전쟁은 여전히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Buriats — Encyclopedia.com (Worldmark Encyclopedia of Cultures and Daily Life)
The Epic of Geser: Local Features of Buryat Versions Reviewed — Oriental Studies, 2021
Negative Characters in the Heroic Epos of the Buryats — N. N. Nikolaeva, 2014
Modern forms of Buryat shaman activity on the Olkhon Island — Anthropological Notebooks, 2013
Siberia's Shaman Festival Unites Believers — The Moscow Times
러시아 시베리아 남부에 거주하는 약 46만 명 규모의 몽골계 최대 원주민인 부리야트족(Buryats)은 바이칼 호수를 중심으로 동서로 넓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지리적으로 바이칼 호수 서쪽의 서부 부리야트족(이르쿠츠크 일대)과 동쪽의 동부 부리야트족(부랴티야 공화국 및 자바이칼 지방)으로 나뉘며, 주요 거주 지역과 신화적 거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이칼 호
📍 호수
바이칼 호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는 부리야트족의 모든 부족과 씨족이 공유하는精神적 고향이자 거주 분포의 기준점입니다. 부리야트인들은 이 거대한 담수호를 '바얀 바이칼(풍요로운 바다)'이라 부르며 신성시하고, 호수를 둘러싼 동서남북의 초원과 삼림 지대를 따라 터전을 잡았습니다.
지리적 구분: 호수 서안(프리바이칼)은 서부 부리야트족, 호수 동안(자바이칼)과 남안은 동부 부리야트족의 영역으로 나뉩니다.
신화적 위상: 백조 처녀 설화(호리 부족 기원)와 푸른 늑대·흰 사슴 전설의 무대가 되는 성수(聖水)입니다.
올혼
📍 섬
올혼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은 바이칼 호수 서부 연안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섬으로, 우리에게 '알혼섬'으로도 잘 알려진 부리야트 샤머니즘의 최고 성지입니다. 현재도 부리야트족 주민들이 마을(후지르 등)을 이루고 거주하며 전통 의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화적 상징: 천신(텡그리)이 지상에 내려보낸 최초의 샤먼인 '독수리'가 내려앉은 장소이자, 섬 북서쪽 해안의 '샤먼 바위(부르한 바위)'가 위치한 곳입니다.
문화적 역할: 매년 시베리아 전역의 부리야트 샤먼들이 모여 합동 제의를 올리는 순례지입니다.
부랴티야
부랴티야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는 바이칼 호수의 동쪽과 남쪽 해안을 감싸고 몽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연방 내 자치공화국입니다. 러시아 전체 부리야트족 인구의 약 3분의 2(약 29만~30만 명)가 이곳에 집중 거주하고 있습니다.
주요 분포 부족: 호리(Khori), 셀렝가(Selenga), 바르구진(Barguzin) 등 동부 부리야트 계열 씨족들이 셀렝가강 유역과 스텝 지대에 넓게 퍼져 있습니다.
종교적 특징: 전통 샤머니즘과 티베트 불교(겔룩파)가 융합되어 공존하는 부리야트 문화의 심장부입니다.
울란우데
울란우데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는 셀렝가강과 우다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부랴티야 공화국의 수도입니다. 단일 도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리야트족 인구가 밀집해 있는 정치·경제·학술의 중심지입니다.
문화 인프라: 인근의 이볼긴스키 다찬(러시아 불교 총본산)과 샤머니즘 센터('텡게리' 등), 부리야트 국립극장 및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구 집중: 현대화와 도시화로 인해 공화국 내 각지의 부리야트인들이 모여들어 독자적인 현대 민족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스티오르딘스키
우스티오르딘스키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는 바이칼 호수 서쪽의 구릉과 평원 지대에 위치한 서부 부리야트족의 행정·문화적 중심 마을입니다. 과거 독자적인 자치구였던 '우스티오르딘스키 부리야트 자치구'의 수도 역할을 해왔습니다.
문화적 정체성: 불교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고대 원형에 가까운 순수 샤머니즘과 영웅 서사시 『아바이 게세르』의 구전 전통을 가장 강하게 보존한 지역입니다.
주요 부족: 에히리트(Ekhirit)와 불라가트(Bulagat) 부족의 후손들이 주축을 이룹니다.
이르쿠츠카야 오블래스트
이르쿠츠카야 오블래스트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는 안가라강 상류와 바이칼 호수 서안을 포함하는 광역 행정구역(이르쿠츠크주)으로, 약 7만~8만 명의 서부 부리야트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8년 행정구역 통합을 통해 우스티오르딘스키 자치구를 특별 행정구역 형태로 편입했습니다.
거주 양상: 오사, 보한, 에히리트-불라가트 군 등 농축산업 지대와 주도인 이르쿠츠크 시내에 걸쳐 넓게 분포합니다.
생업과 신앙: 동부 집단에 비해 일찍부터 정착 농경과 목축을 병행했으며, 회색 황소 신인 '불안 한(부하 노욘)'을 시조로 섬기는 신화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긴스코예
아긴스코예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는 부랴티야 공화국보다 더 동쪽인 오논강과 인고다강 유역 스텝 지대에 자리한 동부 부리야트족의 핵심 거점입니다. 구 '아긴스키 부리야트 자치구'의 행정 중심지로서 주민의 다수가 부리야트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통 보존: 드넓은 초원 지대라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유목 문화와 전통 가옥(게르), 부리야트어 사용 비율이 매우 높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종교적 중심: 19세기 초에 설립된 유서 깊은 불교 사원인 '아긴스키 다찬'이 위치해 있습니다.
자바이칼 지방
자바이칼 지방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은 바이칼 호수 동쪽의 광활한 산악 및 초원 지대를 아우르는 행정구역(구 치타주와 아긴스키 자치구의 통합 지역)으로, 약 7만여 명의 아가(Aga) 지역 부리야트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주요 분포지: 아긴스코예를 포함한 아긴스키 부리야트 자치구(특별 행정구역) 일대와 주도 치타(Chita) 주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지정학적 특징: 몽골 및 중국 내몽골 자치구와 인접해 있어 국경 너머의 몽골계 민족들과 활발한 역사적 교류를 이어왔습니다.
Zabaikal'skii
Zabaikal'skii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는 자바이칼 지방 남동부, 중국 내몽골(만저우리) 및 몽골 동부 국경과 맞닿은 변경 지대에 위치한 정착지입니다. 이 일대 국경 초원 지대는 러시아의 자바이칼 부리야트족과 중국 내몽골(후룬베이얼 시 숄롱진 등) 및 몽골 북동부(도르노드 주)에 흩어져 사는 부리야트 디아스포라가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역사적 배경: 20세기 초반 러시아 혁명과 내전 당시 일부 동부 부리야트족이 이 국경선을 넘어 몽골과 중국 내몽골의 초원으로 이주하는 경로가 되었습니다.
문화적 연속성: 국경을 사이에 두고 양측의 부리야트 공동체가 언어와 씨족 계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