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원사화 단군조선 47대 계보

iam 2026.10.2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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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ada09d116bfe.png규원사화 단군조선 47대 계보

들어가며

《규원사화(揆園史話)》는 1675년(숙종 1) 북애자(北崖子)가 지었다고 전하는 사화(史話)로, 〈단군기(檀君記)〉에 단군왕검부터 고열가까지 47대 임금의 이름·재위 연수·치적을 적어 두었다. 이 글은 그 〈단군기〉를 기준으로 47대 계보를 한 표에 정리하고, 임금마다 책에 실린 주요 기사를 붙인 것이다.

연대는 《규원사화》의 역년을 따라 BC 2333년 건국, BC 1128년 종료로 잡았다. 47대 재위 연수를 모두 더하면 1,205년인데, 원문 말미에는 "47세 1,195년"으로 적혀 있어 10년의 차이가 난다. 이 글에서는 각 대의 재위 연수를 그대로 누적한 1,205년 기준을 쓴다.

업적란의 표기는 두 가지다. **[규]**는 《규원사화》 단군기의 기사이고, **[세]**는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사다. 두 책은 47대 왕명은 같지만 역년(1,205년 대 2,096년)과 세부 기사가 다르므로, [세]는 [규]에 기록이 없거나 짧은 대를 보완하는 참고 자료로만 붙였다.

한눈에 보는 47대

47대 1,205년 동안 평균 재위는 약 25.6년이고, 가장 긴 재위는 1대 단군왕검의 93년, 가장 짧은 재위는 45대 여루의 5년이다. 계승은 44회가 부자 상속이고, 세 차례만 형제 상속이다.

항목

내용

기간

BC 2333 ~ BC 1128 (47대 1,205년)

평균 재위

약 25.6년

최장 재위

1대 단군왕검 93년, 17대 여을 63년, 8대 우서한 57년

최단 재위

45대 여루 5년, 31대 등올 6년, 44대 구홀 7년

형제 계승

24→25대(연나→솔나), 29→30대(마휴→나휴), 37→38대(마물→다물)

섭정

24대 연나 때 숙부 고불가(固弗加)가 섭정

도읍

임검성(우수하) → 34대 오루문 때 낙랑홀로 천도 → 말기 당장경·아사달 은거

세법

8대 우서한 90분의 1 → 15대 벌음 80분의 1

대중국 관계

하(夏)와 정벌·화친 반복(4~15대), 상·은(商·殷)과 각축(21~43대)

종말

47대 고열가가 아사달에 은거, 남후(藍侯)가 제후를 거느리는 열국 시대

단군조선 47대 계보표

재위는 《규원사화》 단군기 기준이며, 계승 관계의 "자"는 선대의 아들, "제"는 선대의 아우를 뜻한다. 업적의 [규]는 규원사화, [세]는 단군세기 기사다.

대

이름

재위

연수

계승

주요 업적·기사

1

단군 왕검 檀君 王儉

BC 2333 ~ BC 2240

93

—

[규] 요(堯)와 같은 시기에 즉위, 우수하(牛首河) 벌판에 임검성(壬儉城)을 쌓고 도읍. 생명·곡식·병사·형벌·질병·선악·지방을 맡는 관직을 두고 팔가(八加) 제도 정비. 태백산 기슭에서 흰 소를 잡아 제천(祭天)하고 신지씨·치우씨·고시씨 사당을 세움. 백성에게 '단군팔조(檀君八條)' 교령 반포. 10월 제천이 풍속이 됨. 재위 93년 뒤 부루에게 양위하고 당장경·아사달에 은거.

2

부루 夫婁

BC 2240 ~ BC 2206

34

자

[규] 즉위 3년 순행·제천. 앙숙(㹞肅)의 반란을 선라(仙羅)를 보내 토벌. 용가·마가 임명, 재정을 맡는 봉가(鳳加) 신설. 수로·도로를 열고 농상·목축·학문 장려. 10월 추수 후 제천과 단군 제사를 정례화. 우순(虞舜)이 차지한 영주(營州) 땅 회복. '어아지악(於阿之樂)'·'조천무' 제정. 선라·도라·동무를 분봉(후일 옥저·비류·졸본). 하우(夏禹)의 도산(塗山) 회합에 참석(동방회맹의 시초). 민간에 부루단지·업주가리 신앙이 전함.

3

가륵 嘉勒

BC 2206 ~ BC 2155

51

자

[규] 구실씨(九室氏)를 용가로 삼음. 하(夏) 왕실에 찬역이 일어나자 식달(息達)에게 남국·진번 백성을 이끌고 정벌하게 하여 국위를 떨침. 제천례를 뭇 신에게까지 확대. [세] 삼랑 을보륵에게 가림토(加臨土) 38자 제정, 배달유기 편찬.

4

오사 烏斯

BC 2155 ~ BC 2106

49

자

[규] 북쪽 순행 중 영초(靈草)를 얻음. 천하를 21주(州)로 나눔. 하(夏) 후상(后相)을 정벌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뒤에 화친·통교.

5

구을 丘乙

BC 2106 ~ BC 2071

35

자

[규] 교화를 사모해 온 하나라 백성을 엄려홀(奄慮忽)에 안치. 소강(少康)이 하를 중흥하자 오래 화호. 태백산을 봉하여 백성의 출입을 금함.

6

달문 達文

BC 2071 ~ BC 2039

32

자

[규] 동해 사람 여로(黎老)를 용가로 삼음. 서쪽 설유를 회유하고 북쪽 앙숙을 진정시키며 남쪽 하(夏)를 물리쳐 동으로 창해에 이르니 10년간 평안.

7

한율 翰栗

BC 2039 ~ BC 2014

25

자

[규] 아질(阿叱)의 난을 여로에게 정벌하게 하여 3년 만에 사로잡음. 하나라가 융성하자 남후(藍侯)에게 군비를 정비시켜 오래 평화.

8

우서한 于西翰

BC 2014 ~ BC 1957

57

자

[규] 일명 오사함(烏斯含). 세율을 90분의 1로 정하고 물자의 유무를 서로 통하게 하여 부족을 보충. [세] 20분의 1 세법, 흉년 대비 창고 설치.

9

아술 阿述

BC 1957 ~ BC 1929

28

자

[규] 어진 덕으로 금령을 범한 자를 벌하지 않고 교화함('똥 눈 땅에도 이슬이 내린다').

10

노을 魯乙

BC 1929 ~ BC 1906

23

자

[규] 처음으로 우리(囿)를 만들어 바깥 짐승을 기름(동산·사육의 시초).

11

도해 道奚

BC 1906 ~ BC 1870

36

자

[규] 부여후가 설유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자 웅가·구려후·진번후가 도와 평정. [세] 염표문(念標文) 반포, 12명산에 국선소도 설치.

12

아한 阿漢

BC 1870 ~ BC 1843

27

자

[규] 재위 연수 외 기사 없음. [세]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 건립, 유위자(有爲子) 등용.

13

흘달 屹達

BC 1843 ~ BC 1800

43

자

[규] 무용(武勇)으로 백성이 두려워하며 따름. 해문(奚門)을 용가로 삼음. 하(夏)의 쇠퇴를 살피고 무악(舞樂)을 보내 시험한 뒤 해문·남후로 하여금 빈(豳)·기(岐) 사이를 정벌하게 하고 뒤에 화해. [세] 은 탕왕을 도와 하 걸왕을 치고(BC 1767), 소도를 많이 세워 천지화랑 양성.

14

고불 古弗

BC 1800 ~ BC 1771

29

자

[규] 부왕의 뜻을 이어 군사를 정비했으나 쓸 일이 없었음. 속진후가 붉은 옥을 바침. [세] 큰 가뭄에 기우제, 호구 조사 실시.

15

벌음 伐音

BC 1771 ~ BC 1738

33

자

[규] 섬돌 아래 훈화(薰華, 무궁화)를 심음. 말량(末良)을 용가로 삼고 덕정을 폄. 하(夏)의 구원 요청에 출병했으나 무도함을 들어 재요청은 거절. 상(商) 탕왕의 인정을 인정해 화해. 세율을 80분의 1로 낮춤.

16

위나 尉那

BC 1738 ~ BC 1720

18

자

[규] 나라 안이 고요하고 평온함. [세] 영고탑에서 구환(九桓) 제후 회의, 삼신 제사.

17

여을 余乙

BC 1720 ~ BC 1657

63

자

[규] 태백산 남쪽에 꼬리 아홉 흰 짐승이 나타남. 제후를 크게 모으고 진번후에게 상을 줌.

18

동엄 冬奄

BC 1657 ~ BC 1637

20

자

[규] 속진후가 집채만 한 짐승을 바침. 우수주의 앙골·장골 형제 반란을 웅가 충달(充達)이 예후·속진후와 함께 5년 만에 평정. 충달의 간언을 받아들여 덕을 닦고 서쪽 백성을 위무.

19

구모소 緱牟蘇

BC 1637 ~ BC 1612

25

자

[규] 남순하여 낙랑홀 성곽 수리. 청구의 10월 무천(舞天) 때 큰 뱀의 재난을 구강(緱强)이 제거하여 큰 상을 줌.

20

고홀 固忽

BC 1612 ~ BC 1601

11

자

[규] 속진후가 담비 가죽옷을 바치자 공이 있는 자를 위해 보관. [세] 영고탑 보수, 구환지도(九桓地圖) 제작.

21

소태 蘇台

BC 1601 ~ BC 1568

33

자

[규] 서쪽을 순행해 남후의 정치를 살피고 상(商) 땅에 군대를 진주. [세] 은 무정(武丁)의 침입 격퇴, 우현왕 색불루의 세력에 밀려 양위.

22

색불루 索弗婁

BC 1568 ~ BC 1551

17

자

[규] 상(商)과 싸워 이긴 뒤 화친, 다시 크게 싸워 국경 안까지 진격하여 해대(海岱)에 주둔하니 백성이 옮겨 삶. [세] 군사를 일으켜 즉위하고 백악산아사달로 천도, 삼한을 삼조선으로 개편(후기 조선의 시작).

23

아물 阿勿

BC 1551 ~ BC 1532

19

자

[규] 아우 고불가(固弗加)에게 낙랑홀을 다스리게 함. 웅가 을손(乙孫)을 보내 남정군을 살피고 상 땅에 읍을 세움. 개마후가 구미수(九尾獸)를 바침.

24

연나 延那

BC 1532 ~ BC 1519

13

자

[규] 숙부 고불가가 섭정. 상(商)이 남쪽 경계를 침공하자 남후가 격퇴. 나라 안에 제단을 증설해 제후들이 하늘에 기도하게 함. 속진의 큰 뱀을 거굴지(巨屈支)가 제거.

25

솔나 率那

BC 1519 ~ BC 1503

16

제(연나의 아우)

[규] 북쪽 변경 순행 중 백성의 궁핍을 탄식('달팽이도 집이 있다'). 물자 교환을 권장해 남북이 배와 수레로 교통. [세] 기자(箕子)가 서화(西華)에 은거.

26

추로 鄒盧

BC 1503 ~ BC 1494

9

자

[규] 재위 연수 외 기사 없음.

27

두밀 豆密

BC 1494 ~ BC 1449

45

자

[규] 단검 이래 열성조의 말씀을 기록해 궁문 안쪽에 걸고 출입 신하가 읽게 함. 병사를 보내 상(商)을 정벌. 속진후 다홀(多忽)이 동해의 귀주(鬼州)를 평정.

28

해모 奚牟

BC 1449 ~ BC 1427

22

자

[규] 남후·비류후·청구후를 소니수(蘇泥水)에 회합시킴. 병을 얻자 흰 옷을 입고 하늘에 빌어 쾌유. 졸본후가 만병을 고치는 영초를 바침.

29

마휴 摩休

BC 1427 ~ BC 1418

9

자

[규] 상(商)나라 사람이 와서 조회. 청구후가 남이(南夷) 바다에서 진흙산이 솟고 불이 나와 돌이 되었다고 보고(화산 기록).

30

나휴 奈休

BC 1418 ~ BC 1365

53

제(마휴의 아우)

[규] 구려후 우타(于陀)를 용가로 삼음. 남순하여 청구의 정치를 살피고 아사달에 이름, 서순하여 엄려홀에서 제후 대회. 은(殷)과 화친.

31

등올 登兀

BC 1365 ~ BC 1359

6

자

[규] 재위 연수 외 기사 없음.

32

추밀 鄒密

BC 1359 ~ BC 1351

8

자

[규] 예후 지막루(知莫婁)를 용가로 삼음. 우수홀에 순행하여 제후를 모으고 그 땅에서 붕어.

33

감물 甘勿

BC 1351 ~ BC 1342

9

자

[규] 재위 연수 외 기사 없음. [세] 삼성사(三聖祠) 건립, 서효사 올림.

34

오루문 奧婁門

BC 1342 ~ BC 1322

20

자

[규] 도읍을 낙랑홀로 옮기고 진번후에게 옛 도읍을 감독하게 함. 절도 사건이 일어나자 '근원이 맑아야 하류가 맑다'며 자책하고 덕을 닦아 범법자를 교화.

35

사벌 沙伐

BC 1322 ~ BC 1311

11

자

[규] 재위 연수 외 기사 없음. [세] 언파불합을 보내 바다 건너 웅습(熊襲) 평정, 조을을 보내 연(燕) 정벌.

36

매륵 買勒

BC 1311 ~ BC 1293

18

자

[규] 재위 연수 외 기사 없음. [세] 협야후 배반명이 삼도(三島) 평정, 연의 침공 격퇴.

37

마물 麻勿

BC 1293 ~ BC 1285

8

자

[규] 진번후 추돌(鄒突)을 용가로 삼음. 남순하여 당장경에 이르렀다가 아사달에서 붕어.

38

다물 多勿

BC 1285 ~ BC 1266

19

제(마물의 아우, 진번후)

[규] 진번후로 있다가 즉위. 설유가 서쪽 변경을 침범하자 진번후·예후·부여후가 격퇴하고 그 경계까지 진입.

39

두홀 豆忽

BC 1266 ~ BC 1238

28

자

[규] 비류후가 큰 자라를 바침. 속진후가 용가가 됨. 남후가 강성해져 고죽군을 몰아내고 엄독홀로 천도, 여파달(黎巴達)이 빈·기 사이에 여국(黎國)을 세움. 임금의 명이 항산(恒山) 이남까지 미침.

40

달음 達音

BC 1238 ~ BC 1224

14

자

[규] 청구후의 딸 아시씨(阿施氏)를 황후로 맞음(어질고 덕이 있어 백성이 흠모). 개마후가 영초를 바침. 설유 땅에 살던 부여 유민이 수렵 생활로 '맥(貊)'이라 불리다 남후의 백성이 됨.

41

음차 音次

BC 1224 ~ BC 1205

19

자

[규] 쇠약해진 왕실을 인덕으로 부흥시켜 제후들이 다시 조회.

42

을우지 乙于支

BC 1205 ~ BC 1196

9

자

[규] 재위 연수 외 기사 없음.

43

물리 勿理

BC 1196 ~ BC 1181

15

자

[규] 어질면서 무용을 좋아함. 남후 검달(儉達)이 청구후·구려후·속진후와 은(殷)을 정벌해 회대(淮岱) 평정, 박고씨를 청주에 세워 엄국(奄國), 영고씨를 서주에 세워 서국(徐國)으로 삼음. 치우 이래 최대의 번성이나 제후들이 왕실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 [세] 융안 우화충의 반란.

44

구홀 丘忽

BC 1181 ~ BC 1174

7

자

[규] 개마후 매올(買兀)을 용가로 삼음.

45

여루 余婁

BC 1174 ~ BC 1169

5

자

[규] 속진후가 달루홀로 치소를 옮김. 남후가 은의 회남(淮南) 땅에 선모국(鮮牟國)을 세움. [세] 연의 침입을 백민성 욕살이 격퇴.

46

보을 普乙

BC 1169 ~ BC 1158

11

자

[규] 남후가 제후를 총괄하여 거느리니 임금을 알현하는 자가 드물어짐. [세] 한개(韓介)의 반란을 상장 고열가가 진압.

47

고열가 古列加

BC 1158 ~ BC 1128

30

자

[규] 즉위 초 국용이 부족해 봉가가 기내 공물로 충당. 왕실 쇠미로 제후들이 명을 받들지 않자 제가와 의논한 뒤 제기를 받들고 당장경을 거쳐 아사달에 은거. 단군조선 종료, 남후가 제후를 거느리는 열국(列國) 시대 개막. [세] 단군왕검 사당 건립, 오가(五加)에게 정사를 맡기고 입산(BC 238).

시대별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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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1~15대, 약 600년)는 팔가 제도·제천·세법 같은 나라의 틀이 잡히고 하(夏)와 정벌과 화친을 반복하는 시기다. 중기(16~38대, 약 470년)는 상·은(商·殷)과 전쟁과 화친을 거듭하고 34대 오루문이 낙랑홀로 천도하는 시기다. 후기(39~47대, 약 140년)는 남후(藍侯)가 제후를 거느리며 왕실이 쇠미해지다가 고열가가 아사달에 은거하는 시기다.

사료 비판

이 계보는 사실로 확정된 역사가 아니라 《규원사화》라는 한 책의 기록을 그대로 정리한 것이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이 책이 숙종 때 지어졌다는 견해와 20세기 초 민족의식을 높이려고 만든 위서라는 견해가 나란히 있고, 조선 후기 저술임은 인정하되 내용을 실제 역사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는 절충안도 있다.

쟁점

위서론

반론

판본

19세기 이전 원본이나 필사본이 없고, 1925년 《단전요의》 인용이 최초 공개다

1972년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심의위원 3인(이가원·손보기·임창순)이 조선 중기 필사본으로 감정했다

어휘

文化·國家·同族·全世界 등 근대어가 천주(天主) 같은 말과 함께 나온다

산중에 숨겨 둔 도가 계열 책이라 유학의 어법을 따를 이유가 없다

내용

부루가 도산에서 우임금과 '상견례'를 했다는 표현은 근대적 발상이다

단군기의 하·상과의 전쟁·외교 연대가 중국 사서와 부합한다(이상시, 1990)

2003년 재감정

서지 전문가들이 비공식 재감정에서 일제기 필사·제본으로 판단했다

북한 학계는 47대 평균 재위 연수와 제도 서술을 긍정적으로 보고 고조선 사회 설명에 채택했다

〈단군세기〉와의 차이도 유의해야 한다. 두 책은 47대 왕명이 같지만 《규원사화》는 1,205년(BC 2333~BC 1128), 〈단군세기〉는 2,096년(BC 2333~BC 238)으로 역년이 891년이나 다르고, 같은 임금의 재위 연수도 다르다(부루 34년 대 58년, 우서한 57년 대 8년). 위서론 쪽은 《환단고기》가 《규원사화》와 《단기고사》를 베꼈다고 보므로, [세] 기사는 독립된 증거가 아니라 참고 자료로만 보는 것이 안전하다.

책의 계보도 사진에서 두밀이 "제26대"로 찍혔 있으나, 자체 순서(추로 26대 다음)와 원문 열거에 따르면 27대가 맞다. 이 글의 표는 27대로 바로잡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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